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는 돈이다]'대치동 은마', 강남 불패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시계아이콘02분 21초 소요
언어변환 숏뉴스
숏 뉴스 AI 요약 기술은 핵심만 전달합니다. 전체 내용의 이해를 위해 기사 본문을 확인해주세요.

불러오는 중...

닫기

[아시아경제 박철응 기자]#나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면 나는 공화국의 수장이라 할 수 있지. '황금알'로 불리는 강남 재건축의 상징이자 욕망의 정점이기도 하다구. '자고 나면 오른다'는 말 알지? 한달만에 수천만원이 올랐고 불과 5년만에 값이 세 배나 뛰어 1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었지.


드넓은 호화주택이냐고? 아니, 낡아빠졌고 국민주택 규모 정도야. 그런데도 한 때 내 몸값은 13억을 넘어섰었어. 정말 그 땐 최고였지. 물론 최근 몇 년간은 좀 찌질하게 지내왔던 게 사실이긴 해. 하지만 말이야, 나는 다시 날고 있어. 재건축 아파트 붐이 일고 있잖아. 무엇보다, 나는 '대치동 은마'라구.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를 보면,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5㎡형의 경우 지난 14일 기준 매매가격이 10억4000만~11억1500만원에 이른다. 지난 3월 말까지만 해도 9억5000만~1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4개월여만에 1억원 이상 껑충 뛰어오른 것이다. 특히 지난달에는 매주 꾸준히 오름세를 보여 한달간 4000만원가량이 올랐다.


77㎡형 역시 같은 기간 8억5000만~9억원이던 시세가 9억3000만~9억8000만원으로 치솟았다. 마찬가지로 6월 초부터 7월초까지 4000만원이 오르는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한 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이 올 들어 실행되면서 촉발된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값 상승기류를 타고 있는 것이다. 소형 평형이나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는 비율을 낮춰주는 등 재건축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정책에 대거 포함됐다.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의 초점은 항상 강남이었고 재건축 아파트였다. 국내 최고 요지에 있는 낡은 아파트를 새로 지어 팔면 시세차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은마아파트는 강남 재건축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고, 정부도 은마아파트 시세를 예의주시하면서 정책의 주된 기준으로 삼았다.


은마아파트는 대치동 316번지에 있으며 전용면적 77㎡(2674가구), 85㎡(1750가구) 두 유형으로 4424가구(14층짜리 28개 동)의 대규모 단지다. 1970년대 말 지어졌는데 당시 민간 아파트로는 사상 최대였다.


은마아파트의 전성시대는 2000년대와 함께 시작됐다. 2000년 4월 헌법재판소가 과외금지를 위헌으로 결정하면서 대치동 학원가는 급속도로 성장해 이른바 '사교육 1번지'로 자리잡아갔다. 더욱이 2001년 말 수능시험의 난이도가 높게 출제되면서 '엄마 부대'가 앞다퉈 대치동으로 몰려들었고 은마아파트는 빛나기 시작했다.


사교육 뿐 아니라 2000년부터 재건축이 추진되면서 달리는 말에 엔진을 달아준 격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은마아파트는 주변의 미도나 우성아파트에 비해 낮은 취급을 받아 '미도 사는 아이들이 은마와는 안 논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진 것이다. 2002년 처음으로 안전진단을 신청해 그 해 10월과 이듬해 3월 연거푸 불합격을 받았지만 한 번 달아오른 불길은 식을 줄을 몰랐다.


부동산114 시세를 보면 은마아파트 77㎡형 매매가격은 2001년 3억7000만원에서 2002년 4억8000만원, 2003년 6억2500만원까지 급등했다. 2년만에 2억5000만원이 오른 셈이다. 84㎡형 역시 같은 기간 4억6000만원에서 5억7000만원, 7억4000만원으로 2억8000만원이 올랐다. 2006년에는 84㎡형 가격이 13억원까지 치고 올라가며 고점을 찍었다. 불과 1년만에 4억원 이상 오른 것이다. 이후 내림세를 보이면서 2012년에는 8억원대까지 떨어졌으나 올 들어 다시 10억원을 넘어섰다.


1979년 입주 당시 가격이 2000만원대 초반이었으니 35년만에 50배나 가치가 상승한 셈이다. 부동산 광풍의 역사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은마아파트는 대표적인 정경유착 비리 사건의 주인공 정태수 전 한보 회장이 재계에 본격 데뷔한 계기이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세무서 말단 공무원이었는데 1960년대 말 "사업을 하면 재벌이 될 것이며 '흙'과 관계된 일을 하라"는 유명 점쟁이의 말을 들었다.


실제로 그는 1974년 공무원 생활을 접고 사업가로 변신했으며 강남 일대 아파트를 잇따라 분양하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가 인생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 은마아파트였다. 상습 침수 지역이었던 부지에 그동안 벌어들인 돈을 모두 투자해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매머드급 아파트 단지를 만든 것이다.


초기에는 분양이 잘 안 돼 극심한 자금난을 겪었다. 하지만 1980년 2차 오일쇼크 직후 유가와 환율이 오르면서 단번에 1000억원이 넘는 분양금이 들어와 이 돈을 세는데 한보 전직원이 동원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통해 그는 점쟁이 말처럼 재벌이 됐으나 이후 무리한 사업 확장과 무차별적 로비로 '수서 비리' 사건을 야기하는 등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은마아파트는 정 전 회장의 부정한 행보만큼이나 부실하게 지어졌다. 입주를 끝낸 직후부터 옥상 방수가 안 되고 수도계량기가 동파되는 등 문제가 드러나 입주민들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가격은 최고지만 지금도 녹물이 나오거나 급수가 안 되고 난방 문제로 입주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 주차 공간이 부족해 접촉 사고가 잦다보니 '은마에서는 새 차를 사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했다.


4수 끝에 2010년에야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아직도 여전히 갈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럼에도 재건축이 좌초되지 않는 한 은마아파트는 '부의 상징'으로 위상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박철응 기자 her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