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주석 기자] 추가경정예산안이 당초 여당이 정한 목표 시점인 24일 순조롭게 통과했다. 처리를 앞두고 여야 원내지도부는 3일간에 걸친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쟁점은 추경안 처리보다는 세수부족 사태의 해법으로 법인세 인상을 부대의견으로 명시하는 문제와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진상 규명 방식이었다. 여야 원내지도부는 합의안을 마련해 추경을 처리했지만, 합의문 해석은 이후에 다시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은 추가경정 예산안 부대의견에 법인세 인상을 명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부대의견을 통해 정부가 가져올 내년도 세법개정안에 법인세 인상 등을 담기 위해서였다. 법인세 인상에 반대하는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물론 유승민 새누리당 전 원내대표가 법인세 인상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한바 있지만 이는 여당에서는 소수의견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 외에도 새정치연합은 국정원의 대국민 해킹 의혹 진상규명을 위해 청문회 개최와 국정원장을 상대로 국회 본회의 현안질의를 할 것을 요구했다. 이 역시 비공개로 진행되는 정보위 내부에서 진상규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새누리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여야는 21일 원내대표간 회동을 시작으로 3일간 수석부대표간 회동, 전화통화, 심야회담 등을 통해 합의를 모색했다. 3일간의 합의사항의 일부를 살펴보년 다음과 같다.
합의문 1. 나 만성적인 세수결손 방지 및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부대의견을 명기한다.
※ 부대의견 : 정부는 연례적 세수결손 방지를 위해 세출구조조정과 함께 세입확충을 위한 모든 방안(소득세?법인세 등의 정비 등)을 마련하고, 국회와 논의하여 대책을 수립한다.
합의문 2.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가. 정보위, 미방위, 국방위, 안행위 등 관련 상임위를 8월 14일 까지 개최하여 관련 자료 제출 및 현안보고를 받는다.
나. 가항의 취득한 자료를 토대로 양당의 합의로 정보위에 출석하는 자의 증언, 진술을 청취한다. 통상 정보위에 출입 또는 제출이 허용되지 않은 증인?감정인?참고인 및 증거방법에 대해서는 보호가치 있는 기밀이 누설되지 않는 방법을 양당 간사가 합의하여 정한다.
합의문 1-나를 살펴보면 여야원내대표는 추가경정안 부대의견을 두고서 심각한 고민을 한 흔적이 엿보인다. 세입확충을 위한 모든 방안(소득세?법인세 등의 정비 등)을 마련하고, 국회와 논의하여 대책을 수립한다' 명시적으로 법인세 인상은 없지반 소득세와 법인세 등을 통해 세수를 확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대의견이 채택된 당일날부터 의미없는 부대의견이라고 폄하된다. 세법개정안을 다루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인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추경 예산안에 대한 반대토론을 통해 "단언컨대 이는 아무 의미없는 부대의견이 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실제적인 법인세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여당 인사들과 정부 쪽에서는 부대의견을 두고서 법인세를 인상해야 할 근거는 없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야당은 합의를 지켜야 한다지만, 명시적으로 법인세 인상 등에 합의한 바 없는 여당이 협조에 나설지는 의문이다.
국정원 해킹 의혹도 마찬가지다. 야당은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같은 입장은 여당의 강력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당은 사실상의 청문회라고 하지만 이는 좀더 지켜봐야할 것으로보인다. 여야 합의문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청문회와 유사한 형태가 될지 말지는 정보위 여야간사 합의 결과에 따라 달라진다. 여야간사 합의과정에서 이견을 보일 경우 증인?감정인?참고인과 현안보고 증거 채택 등을 두고 공전만 벌일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이미 이같은 상황은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야당의 성과라면 통상적인 정보위와 다른 형태의 현안보고를 받을 '가능성이 열렸다'는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굳이 따지자면 이날 여야간의 협상은 현찰을 받고 어음을 받은 셈이다. 추가경정안 예산안 처리라는 여당의 요구를 받아준 대신 법인세와 국정원 해킹 의혹 관련한 야당의 요구사항은 불분명하게 처리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협의는 매우 특이한 양상을 보였다. 두 개의 사안을 두고서 여야가 협상을 벌였지만 두 사안은 연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인세 인상 명시와 국정원 해킹 의혹 진상규명 방식이라는 두개의 안건이 동시에 협상됐지만, 이 두 사안은 연계되지 않는다고 밝힌 점이다. 협상동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같은 이면에는 새정치연합 국민정보지키기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 안 의원은 원내지도부간 협상에 있어서 추경 예산안과 국정원 진상규명을 연계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역시 지난달 국무회의 발언을 통해 법안간 연계 처리하는 국회의 협상관행을 질타한 바 있다. '네가 그것 해주면 우리도 이것 내줄게' 식의 전통적인 협상의 룰이 깨진 것이다. 양보를 해줄 여당도 내줄 게 없고 뭔가를 얻어야 하는 야당도 받을 게 없다보니 애매한 협상만 남게 된 것이다. 모든 협상은 세부사항(detail)에 악마가 있다고 했다. 구체적 협상 내역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여야간 협상은 디테일이 없는 협상이다. 다툴 여지가 많은 셈이다.
첨예한 입장 차이가 나는 사안이 있지만 협상 동력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이 진행됐다. 이같은 협상은 다시금 여야간의 정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이미 법인세 인상여부를 둘러싸고 추경 직후부터 법인세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는 세법개정안이 본격적으로 국회에 넘어온 다음에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갈등은 아직 시작조차 안된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는 더 급한 과제인 국정원 해킹 의혹 규명 방식을 두고서 여야가 격돌할 것으로 보인다.
나주석 기자 gongg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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