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엔·원 환율이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무슨 의미일까. 30대 초보주부 김한아름씨는 저녁을 먹고난 뒤 남편에게 "우리 일본여행 한 번 더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다. 엔·원 환율이 낮다는 건 일본 여행하기 참 좋은 시기라는 얘기다.
환율은 화폐간 거래비율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엔화와 원화는 국내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는다. 그래서 달러화 대비 가격을 비교한 재정환율(arbitraged rate)로 상대적 가치를 매긴다. 예를 들어 달러·원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이고 국제금융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이 달러당 100엔이라면 엔·원 환율은 100엔당 1000원으로 결정되는 식이다.
지금 외환시장의 관심은 엔·원 환율이 900원 아래로 내려갈지 여부다. 정부도 엔·원 환율의 900원 붕괴를 놓고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엔·원 환율이 100엔당 900원 밑을 넘보는 건 달러 대비 엔화 약세 속도를 원화가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라는 이름 하에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풀고 있다. 엔화가 넘실거리니 자연스레 엔화 값은 하락한다. 반면에 원화는 굳건한 모습이다. 한국의 경상수지가 1000억 달러에 가까운 큰 폭의 흑자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원화는 약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경상수지 흑자는 시장에 외화공급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외화 값은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원화 값은 올라간다. 이래저래 엔화 가치는 하락하고, 원화 가치는 올라가니 엔·원 환율은 하락세를 그린다.
정부가 엔저를 우려하는 건 국내 자동차 기업 위주의 수출시장 때문이다. 엔저에서는 도요타를 위주로 한 일본 자동차 회사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올라간다. 예전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고서도 같은 돈을 쥘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같은 국내 업체들이 울상을 짓는 이유다.
중국 관광객 감소도 예상된다. 5월에는 중국 노동절(30일~다음달 4일)이 있어 요우커(중국인 관광객) 대목으로 불린다. 그런데 요우커들이 여행계획을 짜면서 보니 원화 대비 엔화 하락 속도가 가파른 것이 아닌가. 아빠 요우커에게 아들 요우커가 말한다. "아빠, 우리 작년에 한국 다녀왔으니 올해는 일본으로 가면 안돼요? 요새 엔화도 싸졌다던데요." 그렇게 한국으로 들어오는 요우커들은 줄어든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의 경우 올 춘절 때 요우커 1인당 구매액이 56만원으로 2013년(90만원)에 비해 38%나 줄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5월 대목도 요우커 위축이 예상된다.
엔·원 환율 하락이 안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일본 여행을 계획 중인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이기도 하다. 2~3년 전만 해도 1300원을 오가던 환율이 지금은 900원선이다. 예전에 여행비용으로 100만원을 써야 했다면 지금은 70만원만 있으면 가능하다. 마침 날씨도 여행하기 딱 좋은 시기다.
이밖에도 국내 시장에서 팔리는 일본 브랜드들의 가격 하락도 예상된다. 엔저를 무기로 한국 소비자 공략에 나서는 것이다. 국내 경쟁사들로서는 배가 아프지만, 소비자들은 기분 좋은 일이다. 제일모직이 수입하는 일본 꼼데가르송(Comme des Garcons) 가격은 올 들어 10% 가량 떨어졌고, 무지코리아는 지난해 중순 가격경쟁력 강화를 위해 일본 생활용품 브랜드 '무인양품(無印良品)' 670개 상품의 가격을 최대 35% 인하하기도 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