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물 쓰듯 한다"는 말이 있다. 물을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자유재라고 보는 입장이다. 흐르는 강물을 아무 걱정 없이 마셔도 좋았던 우리 선조들에게 물은 자유재였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의 1인당 이용 가능한 수자원은 2007년 기준 1553㎥로 '국제인구행동(PAI)'에 따르면 '물 스트레스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또한 상품 혹은 서비스의 제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에 사용된 물의 총량 즉, 가상수의 개념을 적용하면 우리나라는 1996~2005년에 연간 600억t의 물을 수입한 세계 12번째의 수입국이다. 물 자급률도 38%에 불과한 실정이다.
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은행은 2030년 세계의 물 수요가 공급보다 40% 상회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고 올해 세계경제포럼에서도 물 위기를 가장 영향력이 큰 지구적 위험요소로 꼽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물은 기업의 재무적 성과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고 이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과 우려 또한 해가 갈수록 높아가고 있다.
지난 4월13일 대구에서 열린 세계물포럼에서는 국내 기업들의 물 경영정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는 60조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573개 투자자들이 서명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이니셔티브인 "CDP물정보공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4년 44개 한국 기업에 물 경영정보의 공개를 요구하여 그에 응답한 14개 기업의 정보를 분석한 보고서다.
"새로운 위험과 기회: 기업의 물 경영"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68%가 중대한 물 관련 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 43%는 3년 이내에 이 위험으로 인해 기업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국내 기업의 경우에는 정보 공개를 시작한 첫해로서 응답 기업 수가 14개에 불과하다는 한계는 있지만 71%가 지역별 물 위험 평가를, 57%가 물 규제로 인한 위험 평가를 하고 있다고 응답하는 등 적극적인 대처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업계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응답률 50%보다 더 높은 67%의 응답률을 보여 국내 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눈에 띈다. 물로 인한 위험요인으로는 물 부족, 홍수, 가뭄, 수질 악화 같은 물리적 위험과 규제의 불확실성 같은 규제적 위험을 지적하고 있고, 기회요인으로는 브랜드 가치, 물 효율 향상과 비용 절감,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판매 등을 꼽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입장에서 보면 처음으로 하는 것이란 위안도 할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첫째는 우리 기업의 응답률이 32%에 머물러 글로벌 기업의 응답률 58%에 비해 많이 뒤처진다는 점이다. 아직은 홍보나 기업들의 인식이 부족한 결과라 생각하고 내년에는 더 높은 참여를 기대해본다. 둘째는 물 사용이 많고 가장 위험에 노출되기 쉬운 유틸리티 업종의 참여가 특히 저조한 점이다. 이 업종의 응답률은 12개 대상 기업 중 동서발전 한군데에 불과해 글로벌 기업의 응답률 74%와 현격한 격차를 보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기업에 속한 기업이 7개인데 이들 중 응답을 한 기업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스코 세 기업에 불과하다. 자동차를 비롯한 나머지 기업들은 573개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기업을 홍보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물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다. 기업이 물을 잘 경영하는 일은 기업 자신만이 아니라 동시에 세상의 다른 생명에게도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해주는 아름다운 자선이다. CDP물정보공개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기업이 돈도 아끼고 세상도 살리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