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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신군부 박해 딛고 살아남은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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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17일부터 설날 공휴일 부활 30주년 맞아 각종 관련 기록물 홈페이지에서 제공

[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구정'은 뭐고 또 설날은 뭐예요?". 오는 19일은 음력 1월1일로, 추석과 함께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 연휴다. 하지만 30대 후반 이후의 세대들에게는 '설'이라는 이름보다 '구정'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30년 전에는 양력설(신정)을 공휴일로 지정해 쇠고 음력설(구정)은 그냥 넘어가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인 설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은 1985년 정부가 음력 1월1일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공휴일로 지정한 이후부터다. 음력설은 100년 전인 조선 말 이른바 개화파들의 '을미개혁'으로 인해 1896년 1월1일부터 태양력을 수용하면서, 양력 1월1일이 공식적인 ‘설날’이 된 후 달력에서 지워졌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여전히 음력 1월1일을 최대의 명절로 인식하고, 조상에 제사 지내고,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렸다. 일제 시기에는 음력설 쇠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공권력으로 억압한 것은 물론 물리력까지 행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제는 음력 설날에 각 관청과 학교의 조퇴를 엄금하거나 흰 옷을 입고 세배 다니는 사람에게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했다.


음력 설 억제정책은 8.15 광복과 함께 나라를 되찾은 후에도 지속됐다. 정부는 이중과세(二重過歲, 양력과 음력으로 두 번의 설을 쇠는 것) 방지라는 명목 하에 양력 설을 계속 장려했다.

1949년 양력설을 공휴일(양력 1월 1∼3일)로 지정했고, 신군부가 들어선 1981년 12월16일엔 국무총리 지시를 통해 모든 공무원들에게 구정을 쇠지 말도록 하고 국민들에게도 신정을 쇠도록 하라는 방침이 떨어졌다. 당시 신군부는 정부 각 부처별로 신정 귀성열차 요금의 할인, 재소자나 군인에 대한 떡국 등의 구정 특식 제공 지양, 신정에 맞춘 시중자금 집중 공급 등을 통해 국민들로 하여금 신정 설을 쇠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일제와 정부의 이같은 양력 설 강요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음력 설을 ‘전통의 명절’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해마다 고향으로 가는 길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로 인해 1981년부터 국회에서 음력설을 공휴일로 지정하는 논의가 진행됐고, 1984년 국회 건의, 1985년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음력설은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으로 하루짜리 공휴일로 저정되는 등 부활의 계기를 맞았다.


이후 1989년 '설날'이라는 이름을 다시 되찾았고, 공휴일도 전날과 다음날을 포함해 3일로 늘어나면서 우리 민족은 고유의 명절인 '설날'을 마침내 되찾게 됐다.


한편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음력 설날이 공휴일로 지정(1985년)된 지 30주년을 기념해 2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민족의 대명절, 설날 풍경'으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 17일부터 홈페이지(www.archives.go.kr)를 통해 서비스한다.


동영상 8건, 사진 24건, 문서 8건 등 총 40건으로, 설날의 공휴일 지정과 관련한 정부정책의 변화와 설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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