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 발달 수준이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보다 못하다는 이야기가 얼마 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정책 수장을 지냈던 한 분으로부터 어떤 모임에서 참석자들이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주도하던 기라성과 같은 분들의 이름들을 떠올리며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금융은 왜 이렇게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가"라는 자조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대화 속에 가장 먼저 이야기 나오는 것이 규제 문제다. 우리나라 금융은 규제가 많아서 발전을 못한다고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런데 정말 규제만이 이슈인가. 규제 외에 현재 우리의 경제ㆍ사회적으로 처한 상황이 금융산업을 매우 어렵게 한다. 1~2%대로 낮아진 초저금리 환경은 아직 예대마진에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은행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구조적인 내수 침체와 엔저 정책, 세계 경기의 불황은 우리 수출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이로 인해 기업들의 수익성도 나쁘고 과감한 투자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주가가 부진하고 인수합병(M&A) 활동도 줄어들었다. 투자자들은 더욱더 싼 수수료를 찾아 거의 온라인으로 주식 거래를 한다. 증권업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이유다. 가계소득이 줄고 저금리로 인한 자산운용 수익률 감소로 보험업도 매우 어려운 지경이다. 주식시장 침체로 수탁고 또한 줄어 자산운용사들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업은 서비스산업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전문가들은 설사 그들이 한국인이라 해도 그다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단 금융시장의 규모도 적고 거래 형태도 다양하지 않아 수익을 내기 어렵다. 이에 따라 보상의 수준 또한 선진 금융시장 대비 현저히 낮다. 게다가 개인소득세율은 우리의 경쟁시장인 홍콩ㆍ싱가포르 등에 비해 몇 배에 이른다. 근로소득세는 2~3배고, 사모펀드(PEF)나 헤지펀드 운용자의 성과 보수에 대한 세율이 이들 국가에서는 '0'인 반면 우리는 40% 이상의 개인소득세를 내야 한다. 국제 경쟁력을 갖춘 금융산업을 키우려면 사람이 키(열쇠)인데, 이런 환경 속에 능력이 출중한 전문 인력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일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비거주자에 대한 국내 소득세율을 부과하는 기준을 국내 체류 180일 이내에서 90일 이내로 강화한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해외의 금융 전문인력들이 한국을 오가면서 일하기마저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금융산업 중 그나마 국제 경쟁력을 키우기 비교적 용이한 부분이 자산운용업이다. 그 이유는 대규모 인프라와 브랜드가 비교적 덜 필요한 부문이기에 그렇다. 이 산업을 받치고 있는 것은 국민연금 등 연기금들이다. 그런데 일례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방 균형 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전주로 이전한다고 한다. 위에 이야기한 여러 이유로 금융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일하기 꺼리는데 이제 지방으로 가서 근무하라 한다. 세종시 이전의 예에서 보듯 인정하기 싫겠지만 자녀 교육 및 인프라 미비 등의 이유로 많은 '이산가족'이 양산되고 있다. 또 금융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아무리 정보통신기술(ICT)이 발달해도 서로 만나서 해야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왜 뉴욕이나 런던ㆍ홍콩ㆍ싱가포르 등이 소위 '머니센터'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또 금융 전문인력들이 비싼 경비를 들여가며 출장지에서 많은 시간을 쓰는지를 보면 자명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제조업으로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운 선진국형 경제구조 속에 있다. 5000만 인구를 먹여 살리고 내수를 진작하려면 ICT를 비롯한 지식 기반의 서비스산업 발전이 필수적이고 그중에 금융산업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산업의 발전 저해 요인으로 단순히 규제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다양하고 종합적인 문제들을 시장 참가자들과 함께 고민하고 풀어 봐야 하지 않을까.
이재우 보고펀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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