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절차법 시행 한달···300인 이상 사업장 100곳 채용공고 살펴보니
10곳 중 3곳은 여전히 '서류 미반환' 명시하기도
"권리 인정받으려는 자료는 제출하지 말라"는 곳도…채용절차법 회피 '꼼수'
[아시아경제 유제훈 기자] 기업체 등에 입사지원을 했다가 불합격된 경우 이력서 등 채용 관련 서류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채용절차법'이 시행 한 달을 맞고 있으나 채용현장에서는 이를 지키지 않는 곳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메일을 통한 제출서류에 대해서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8일 고용노동부(고용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채용절차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새해부터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의 기업ㆍ기관들은 채용절차법 관련조항을 알려주고 구직자가 원할 경우 이력서ㆍ기획서 등 제출 서류를 의무적으로 반환해야 한다. 이 법은 채용과정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구직자의 개인정보ㆍ아이디어 등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마련됐다.
◆본지 조사 기업 100곳 중 27곳 '서류 미반환' 명시=그러나 아시아경제신문이 최근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ㆍ기관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조사대상의 약 1/3인 27곳의 기업ㆍ기관이 '제출된 서류를 일체 반환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채용 공고에 '권리를 인정받고자 하는 자료는 제출 자체를 금하여 주십시오'라고 고지 한 곳도 있었다. 통상 구직자들이 취업을 위해 기본 제출 서류 외에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다양한 자료ㆍ서류를 제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용절차법을 우회하겠다는 '꼼수'로 읽힌다.
반면 채용절차법에 따른 반환의무를 채용공고에 고시한 기업ㆍ기관은 단 3곳에 그쳤다.
◆기업들 군색한 변명…취준생 '속앓이'만=채용절차법을 위반한 기업들의 해명은 다양했다. 금융권 S사의 채용 담당자는 "채용을 담당하는 직원이 한 명이다"라며 "법을 어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손이 부족해 채용공고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물류기업 J사 관계자는 "특별한 계획은 없으나 구직자가 반환을 요구하면 법에 따라 반환할 것"이라며 "현재는 서류를 일체 반환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고 말했다.
구직자들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취업준비생 이모(26)씨는 "얼마 전 지원한 한 언론사에서는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하라고 했다"며 "PD를 지망하는 취업준비생의 경우 필기전형에서 평가 단계가 중요한데 (방송사가 기획안을 이용해) 그 프로그램을 제작해 버리면 기획안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고 토로했다.
◆온라인·전자우편 제출 서류, 채용절차법 적용 대상 아냐…실효성 의문=이처럼 채용절차법이 현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법 자체가 가진 맹점도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채용절차법에 따른 반환 대상 서류는 서면으로 제출된 자료에 국한된다. 최근 채용시장에서 서면 대신 온라인(전자우편, 온라인 채용시스템 등)으로 서류를 제출하는 곳이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온라인으로 제출한 서류는 채용절차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채용절차법에 따른 서류반환 의무를 고시한 기업이 적은 이유는 상시근로자 300인 이상의 대기업이 대부분 온라인ㆍ전자우편을 통해 서류를 접수하기 때문"이라며 "전자우편이나 온라인 채용시스템 등을 통해 제출한 서류는 별도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채용절차 후 파기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취업준비생 강모(31)씨는 "이메일 등으로 제출한 서류의 파기 여부를 구직자들이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운 만큼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취업 서류 반환이 구직자의 개개인의 문제가 돼버리면, 법의 취지와 달리 권리로서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며 "철저한 지도ㆍ점검과 함께 구직자들이 온라인ㆍ전자우편을 통해 제출된 서류의 파기 과정이나 채용절차법에 따른 반환의무 등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권고ㆍ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아직 시행 첫 달이다 보니 일선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이 법안의 세부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서류 반환을 하지 않겠다는 고지는 명백한 위법사항이므로 앞으로 지도ㆍ점검과 홍보 활동을 병행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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