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이정협·김진수 새활용…차두리·김진현 재활용
백업 공격수 이정협 등 깜짝 선발, 감독 예측대로 맹활약
31일 호주-UAE 승자와 결승전
[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슈틸리케 매직'인가. 한국 축구가 기지개를 켠다. 아시아 정상을 향한 디딤돌을 하나하나 놓으면서 해묵은 과제들을 풀어내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61·독일)이 부임한 이후 대표팀은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달라져왔다.
축구대표팀이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기는 2007년 7월 핌 베어백 감독(59·네덜란드)이 물러난 이후 7년 만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9월 8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대표팀과 우루과이의 친선경기를 관전했다. 감독 데뷔경기는 10월 10일 열린 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다. 외국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우려와 희망이 공존했다. 한국 축구를 이해하는데 걸릴 시간과 비용 부담은 컸다. 그러나 '의리축구'를 더이상 계속할 수는 없었다. 편견도 고정관념도 없는 선수선발과 전술 운용을 기대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필요한 선수라면 이름이 있든 없든 뽑고, 뽑은 다음에는 알차게 활용했다. 그는 공격과 수비, 수문장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선택을 했다. 적어도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대표팀이 결승에 진출하는 시점까지 자신의 선택에 대한 보상을 받아냈다. 공격수 이정협(24·상주), 수비수 김진수(23·호펜하임)와 차두리(35·FC서울), 수문장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서독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 등에서 특급 수비수로 활약한 그는 수비에서 공격으로 견고하게 공을 전개하는 경기운영에 초점을 맞춘다. 이 축구는 강한 체력과 속도, 책임감을 요구한다. 슈틸리케가 선택한 선수들은 모두 이 조건을 충족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아니었다면 차두리를 대표팀에 뽑았을까? 차두리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자 변함없는 스피드와 파괴력을 보여줬다. 강한 힘과 체력으로 상대를 제압해온 그는 노련미까지 더한 완전체가 되었다. 그의 재능을 슈틸리케 감독이 놓치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승리가 필요한 시점에 차두리를 투입해 상대의 왼쪽 진영을 흔든다. 그의 폭발력은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22일·2-0승)에서 확인되듯이 아시아권 선수들이 감당하기 어렵다. 김진수는 엄청난 스피드와 활동량을 자랑하면서 차두리의 반대편 수비를 책임진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과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경기를 거듭하며 경기를 읽는 시야와 패스가 정교함을 더했다. 차두리와 김진수는 나란히 도움 두 개씩을 기록했다.
골키퍼 역시 새 판짜기의 중심에 선 포지션.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이 부임하기 전까지 국가대표 두 경기 출전에 그친 김진현을 선발로 중용했다. 김진현은 슈틸리케 감독이 원하는 전술에 부합했다. 운동능력이 뛰어나 눈부신 선방을 여러 차례 해냈을 뿐 아니라 후방에서부터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에 능하다. '마지막 수비수'로서 수비수들의 뒷공간을 책임질 만큼 활동반경이 넓고 판단력까지 갖췄다. 그가 주전 골키퍼로 도약하면서 '대표팀에 고정된 선발 멤버는 없다'는 경쟁의식도 무르익고 있다.
이정협(24·상주)은 슈틸리케 매직의 하이라이트다. 감독은 무명이던 그를 K리그 클래식 경기를 통해 꾸준히 관찰하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쓸곳을 확실히 정해 뽑았다. 그의 등장은 대표팀의 최전방에 아연 활기를 불어 넣었다. 이정협은 힘과 높이를 활용해 상대 골문에서 공중 볼을 따내고 수비진을 제압하는 '타깃형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고 있다. 대표선수가 되어 출전한 여섯 경기에서 세 골을 넣었다. 구자철(26·마인츠)과 이청용(27·볼턴) 등이 부상으로 빠진 호주와의 조별리그 3차전(17일·1-0 승)부터는 세 경기 연속 원톱으로 선발 출전했다. 호주와 이라크(26일·2-0 승)를 상대로는 결승골까지 넣었다. 축구팬들은 "이정협을 발굴한 것만으로도 슈틸리케 감독의 능력은 확신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마지막 한 계단만 오르면 1960년 이후 55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밟는다. 대표팀은 오는 31일 오후 6시 시드니에서 호주와 아랍에미리트(UAE)의 4강전(27일 오후 6시) 승자와 우승컵을 다툰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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