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허삼관'의 절세미녀 '허옥란' 역 맡은 하지원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허삼관은 동네 시장에서 뻥튀기를 파는 허옥란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허삼관은 그 길로 피를 팔러 나선다. 피를 많이 뽑기 위해서 배가 아플 때까지 물을 잔뜩 마시고, 고통스럽게 오줌을 참아내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코믹하다. 피를 팔아 얻은 돈으로 허삼관은 옥란에게 만두며 불고기, 냉면을 사주며 대뜸 말한다. "언제 시집오실 거에요?" 옥란의 아버지를 찾아가서도 다짜고짜 말한다. "같은 허씨니까 대를 이을 수 있습니다. 데릴사위를 삼아주십쇼."
중국 출신 작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1950년대 충남 공주로 배경을 바꾼 영화 '허삼관' 이야기다. 배우 하정우가 감독 겸 주연을 맡았으며, 허삼관이 한 눈에 반한 절세미녀 옥란은 하지원(37)이 연기한다. 제작사가 판권을 사들이고도 16년간 적절한 감독과 배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하정우가 자신의 파트너 하지원 캐스팅에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였다고 하는데, 역시나 '허삼관'에서의 하지원은 다른 어떤 영화에서보다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14일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하지원은 "엄마 역할에 대한 부담감때문에 거절했더니 하정우씨가 '나도 아빠 역할이 처음이다. '옥란'역에 너무 잘 어울린다'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첫 제안을 받았을 당시에는 드라마 '기황후' 때문에 밤샘 촬영이 계속되던 때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서야 여유가 생겨 그날 하정우씨를 만나 정중하게 거절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근데 그날 아침에서야 보니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고, 문어체 대사도 매력적이었다.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보다도 이 작품을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궁금한 마음이 커졌다. 처음에는 '옥란' 역이 나에게 맞지 않는 옷으로 여겨졌는데, 주변에서 다들 어울린다고 하니 거기에 대한 의아함도 있었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작한 촬영 현장은 그야말로 "힐링캠프 그 자체"였다고 한다. 대하 드라마를 끝내고 지친 몸과 마음이 '허삼관'으로 치유가 됐다. '절세미녀'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캐릭터가 없는 '옥란'을 연기하기 위해 "상상력을 동원해 글을 쓰면서 빈 부분을 채워나가기도 하고", 후줄근한 몸빼바지와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고를 때도 "디자인과 색깔, 패턴을 고려해가며" 몇 번이고 다시 입어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모든 과정을 그는 "신나게 놀았다"라고 표현했다. 지금까지 영화에서도 주로 액션, 무술, 스포츠 등 몸을 쓰는 역할을 많이 했던 터라 힘을 빼고 촬영한 이번 영화에 대해 남다른 애착도 가지고 있다.
허삼관은 끝내 허옥란과의 결혼에 성공한다. 일락, 이락, 삼락이라는 세 아들도 낳아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마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그게 바로 장남 일락이가 허삼관이 아닌, 허옥란이 결혼 전 잠시 교제한 하소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결국 일락이는 하소용의 아들로 밝혀지고, 허삼관은 11년간 남의 자식을 키웠다는 생각에 분노한다. "일락이가 남의 아들로 밝혀지고 난 후의 허삼관의 태도는 너무 유치하다. 일은 안하고 평상에 삐딱하게 누워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는 그 장면에서는 정말이지 너무 얄미워서 표정도 진심으로 나왔다. 하지만 나한테 못되게 굴면서 밤에는 혼자 울고 그런 모습들이 귀엽기도 하다.(웃음)"
배우 출신의 감독 하정우와 작업한 점에 대해서는 "장점이 더 많다"고 답했다. 그만큼 배우들의 감정과 컨디션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배려해주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동갑내기지만 같은 배우이기 이전에 감독이라는 생각에 작품이 끝날 때까지 존칭을 썼다"며 "오히려 감독으로 생각하다가 다시 상대배우로 연기를 하니까 어색하고 부끄러울 정도"였다고 한다. "하정우씨는 감독으로서의 재능이 굉장하다. 앞으로도 계속 연출을 맡았으면 좋겠다"는 칭찬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원을 그동안의 작품에서 늘 건강하고 밝은 역할을 담당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뜻을 펼치며 위기를 극복하는 여전사의 이미지다. 본인 스스로도 "남들이 하기 힘들어하는 역할이나 무엇인가를 극복하고 정복하는 역할을 좋아한다"고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정도다. 이제는 "매혹적인 악역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며 그는 "'허삼관'이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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