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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시계아이콘03분 07초 소요

구름 노니는 ‘힐링로드’ 강릉 바우길 17구간, 안반데기 ‘운유길’을 가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강릉 안반데기 운유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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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용준 여행전문기자]험준한 산길을 굽이굽이 휘감아 오릅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 아래 첫 동네'로 갑니다. 비탈진 능선을 따라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고루포기산 자락 해발 1100m 안반데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0∼50년 전에는 헐벗고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화전(火田)과 벌목의 상처로 뻘건 흙과 바위투성이로 남은 땅. 겨울이면 매서운 추위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황소바람이 능선을 타고 넘는 곳. 칼바람과 추위에 맞서야 하는 최악의 환경. 그곳이 바로 안반데기입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이곳은 지금 산자락 가득 펼쳐진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이 됐습니다. 땅을 변모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의 고된 노력'이였습니다.


이런 안반데기에 이름도 예쁜 길이 생겼습니다. 강릉바우길 17구간인 안반데기 운유(雲遊)길입니다. 자고나면 새로운 길이 생긴다고 할 정도로 걷기가 대세지만 운유길은 여타 길들과는 다릅니다. 안반데기 기존 농로에 '구름도 노닐다(운유)간다'는 스토리로 생명을 불어넣은 힐링길입니다. 느릿느릿 걸으며 능선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조각보 배추밭이랑 옛 화전민의 삶과 정취를 오롯이 느껴볼 수 있습니다.
 
새해 품었던 첫 마음을 다지는 여행지로 안반데기 운유길을 떠올렸다. 작심 3일이란 말이 유행병처럼 새해만 되면 떠돌지만 1100m 안반데기에 서면 피나는 노력의 결과물이 어떤 건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구름도 노닐다간다는 운유길을 따라 멍에전망대로 가는길

칼바람을 뚫고 운유길을 간다. 안반데기로 드는길은 원시림의 한복판을 차고 오른다. 양옆으로 우람한 적송이 굴참나무며 신갈나무 같은 활엽수들과 어우러져 있다. 숲을 지나면 해발 1100m 안반데기에 닿는다. 이곳의 행정명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데기의 '안반'이란 떡메를 내려칠 때 받치는 판을, '데기'란 둔덕을 뜻하는 '덕'의 강원도 사투리로 우묵한 고지대에 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다.

안반데기 운유길의 들머리는 운유촌이다. 이곳에서 시작해 멍에전망대, 피득령, 일출전망대, 성황당을 둘러 운유촌으로 되돌아오는 6㎞ 코스가 지난해 11월23일 열린것.


운유촌을 나섰다. 오르막길을 10여분 오르면 멍에전망대 갈림길이다. 직진을 하면 운유길과 이어지는 고루포기(2015년 조성)구간이다.

얼굴을 때리는 바람이 거세다. 아니 매섭다. 한발 한발 길을 따라 발을 내딛는다. 바람 한 겹이 벗겨지면 다른 길이 나오고, 또 한 겹 벗겨지면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눈덮힌 조각보 배추밭, 안반데기 운유길 안내표지석, 일출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토빛 도는 배추밭, 화전민 사료관(사진 왼쪽시계방향으로)

칼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멍에전망대에 섰다. 얼핏 보면 초록빛 생명력을 잃고 을씨년스럽게 변한 모습에 실망감도 들겠지만 생동감이 사라진 자리에 대신한 고요한 적막감이 그리 나쁘지 않다. 이랑마다 눈이불을 뒤집어 쓴 조각보밭들과 풍력발전기의 위용은 초록의 그것과는 또 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뒤로 돌아서면 동해와 강릉 시내가 눈이 시리도록 푸르게 펼쳐진다. 안반데기 최고의 '전망대'라는 말이 실감난다.


멍에전망대 이름엔 사연이 절절하다. 멍에는 소가 밭갈이 할때 쓰는 보구래(쟁기)의 한 부분이다. 지난날 소와 한 몸이 돼 이 험한 밭을 일구던 화전민들의 애환과 개척정신을 기리고자 밭갈이에서 나온 돌을 모아 쌓은 게 바로 멍에전망대다.


전망대를 나와 피득령으로 간다. 피득령길은 겨울 비경 중에서도 비경으로 손꼽힌다. 무릎가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돌아다니는 것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는 재미다.


피득령에서 한 숨 고르고 내려서면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상쾌하게 귓전을 때린다. 가지마다 하얀 옷으로 치장한 나무들이 경쟁하듯 아름다움을 뽐낸다.


눈앞에 잡힐 듯한 풍차를 바라보며 걷는다. 종아리가 팍팍해질 때쯤 일출전망대가 나온다.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지만 사방 쭉 뻗은 능선과 동해의 장쾌한 풍경에 눈이 번쩍 뜨인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구름도 노닐다 간다는 안반데기 운유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

해발고도가 높은 안반데기에는 수시로 구름이 걸린다. 구름이 능선을 타 넘으면서 온통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여 주지 않는 때도 있다. 삽시간에 운무가 걷히면 주변의 산자락들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중 최고라면 아침 햇살이 퍼질 때 온통 붉게 물드는 구릉과 그 뒤로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에 고인 구름이 출렁이는 모습이다. 이런 풍경 앞에서 '장엄하다'는 표현은 전혀 손색없다.


일출전망대를 나와 소나무아래 벤치에서 숨을 고른다. 안반데기의 명물인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휘익 휘익 날갯짓을 해된다. 풍력발전기 밑에서 듣는 웅웅거리는 프로펠러의 진동은 위압적이면서도 색다른 느낌이다.


헬기장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완만한 내리막이다. 길은 부드럽고 포근하다. 뒷짐 지고 한껏 여유를 부려볼 만한 그런 길이다. 안반데기 운유길은 장쾌한 풍경도 좋지만 무엇보다 동행과 조곤조곤 대화를 하며 걸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부드러운 길이 절로 마음을 열게 만든다. 숨이 턱에 받치는 힘겨운 코스가 없는 덕에 트래커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금까지 안반데기의 능선과 정상을 걸었다면 이제부터는 안반데기의 허리를 가로지른다. 성황당까지 줄곧 여유롭다. 좌우를 줄러볼 수 있는 여유가 한껏 묻어난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황토빛 배추밭 위로 멍에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에 서면 푸른 동해바다와 강릉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성황당을 지나면 종착지에 가까워진다. 곧 운유쉼터로 내려선다. 운유쉼터 부근에는 화전민사료전시관이 있다.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 잡초와 자갈로 뒤덮인 척박한 땅을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한 과정과 화전민들의 애환과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운유촌으로 들어선다. 어느새 매서운 바람이 잦아든다. 느릿느릿 걸어본 안반데기 운유길의 풍광은 아름답고 매혹적이다. 그러나 그곳이 가진 게 단지 풍경의 아름다움만은 아닐것이다. 오히려 안반데기에 바쳐진 반세기 전 사람들의 억척스런 노동이 더 묵직한 감동으로 마음에 담긴다. 운유길은 꼭 그런길이다.


강릉=글ㆍ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여행메모
△가는길=
안반데기는 평창 쪽이나 강릉 쪽에서도 갈 수 있지만, 수도권 인근에서 출발하면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쪽이 편하다. 영동고속도로 횡계나들목으로 나와 용평리조트 방면으로 가다 리조트 입구 삼거리에서 도암댐으로 직진한다. 댐 못미처 왼쪽 편으로 고갯길이 나타난다. '안반데기'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이 고갯길의 정상이 바로 안반데기다. 겨울철에는 눈이 많이 내려 수시로 통제가 되기에 월동장비는 꼭 챙긴다. 강릉 쪽에서 간다면 한적한 닭목령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길이 운치 있다. 문의 033-655-5119. 010-5378-5520. http://www.안반데기.kr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감자옹심이

△먹거리=안반데기 주변 먹거리는 횡계에 몰려있다. 오징어와 삼겹살에 고추장 양념을 해서 구워 내는 오삼불고기와 황태구이ㆍ황태국이 유명하다. 오삼불고기는 '도암식당'(033-336-5814)이 알려져있다. 황태구이나 황태국을 맛보려면 '황태회관'(033-335-5795)이 이름났다. 대관령 하늘목장에서 2~3분 거리에 있는 이촌쉼터(033-336-4640)는 감자옹심이(사진), 손칼국수, 메밀부침개 등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볼거리=40년만에 문을 연 대관령하늘목장을 비롯해 양떼목장, 삼양목장, 황태덕장 등의 겨울풍경은 장관이다. 선자령트레킹, 바람마을의야지 겨울체험, 용평리조트 등 횡계방면으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많다.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대관령 양떼목장

배추밭 사잇길이 어머니 누비이불 같구나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눈덮힌 대관령 양떼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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