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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2014년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

시계아이콘01분 49초 소요

2014년 '갑오년'이 채 한 달도 안 남았다.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한 해였다.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올해는 유독 큰 사고들이 많았다. 대한민국의 적폐가 한꺼번에 드러난 '뼈아픈 해'로 기억될 듯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까지 안전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 4월16일. 수학여행을 떠난 꿈많던 250명의 학생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허망하게' 침몰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입법ㆍ사법ㆍ행정 등 모든 분야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노후 선박이 아무런 제재 없이 들어오고, 불법 개조된 선박은 과적이 용인됐다. 승무원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이들에게서 직업윤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머전시(비상)' 상황에 대한 정부 당국의 통제 시스템은 완전히 망가진 채 '먹통'이었다.

김해에서 여고생이 집단 폭행으로 살해 암매장된 사건 역시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건 전말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은 '악마를 보았다'며 경악했다. 피의자들은 피해 여학생을 감금한 뒤 성매매시킨 돈으로 생활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며 냉면사발에 소주를 따라 강제로 먹였다. 토사물을 받아 다시 먹이는 '금수'같은 짓도 서슴지 않았다. 실신하면 뜨거운 물을 부었다. 이도 모자라 피해자를 살해한 뒤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훼손한 뒤 암매장했다. 대한민국의 인성교육 부재를 보여준 또 다른 '민낯'이었다.


8월 초에는 육군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병이던 윤모 일병이 폭행으로 사망했다. 윤 일병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인 구타에 시달렸다. 신성한 국방의무를 위해 떠났던 젊은이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왔다. 지금 대한민국 군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위(상부)'에서 알지 못하는 '내무반 무정부상태'에 대한 국민들의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은 국방시스템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준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지난 2월에는 서울 송파 가락동에서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자살했다. 어머니는 실직상태였고, 큰 딸은 만성질환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두 딸아이를 품에 앉고 세상을 떠나면서 집세와 공과금으로 70만원을 남겼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정말 죄송합니다"였다.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인가. 정말로 죄송하고 미안해 해야 할 사람은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들이 아닌가.


우리는 지금 '허울좋은' 복지예산 100조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돈이 송파 세 모녀와 같은 힘겨운 이들에게 얼마나 제대로 쓰이는지는 알 길이 없다. 세계 10대 경제대국 위상이라는 화려한 외형과 달리 초라한 대한민국의 복지 현주소를 보여주는 '민낯'이다.


그리스어에 '아포리아'(Aporia)'라는 말이 있다. 배가 좌초돼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극한 상황을 일컫는다. '길(방편)'이 더 이상 없다는 최악의 상황이다. 위기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일컫기도 한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런 상황은 아닐까. 경제상황이 나쁘지 않다보니 그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경제가 대한민국의 '민낯'을 가려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경제가 더 이상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을 감춰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고대 최고의 문명을 꽃피웠던 그리스 사람들은 아포리아를 만났을 때 이렇게 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 손가락질 하는 대신 그 손가락을 가장 먼저 자신에게 돌렸다.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모든 문제의 해법을 찾았다는 얘기다. 또 노를 더 빨리 젓기 보다는 잠깐 노를 내려놓고 옆사람과 지혜를 모았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2월 '동장군'의 기세가 거세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을 뒤덮은 아포리아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 수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내년 을미년에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줄기를 기대한다.



이영규 사회문화부 지자체팀 부장 fortune@asiae.co.kr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영규 기자 fortun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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