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영협회(AMA)에서 펴낸 책 한 권이 요즘 화제다. '겸손의 리더십: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배우는 12가지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글쓴이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아닌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활동 중인 유대인 제프리 크레임스라는 점이다. 그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오랫동안 이끈 잭 웰치의 경영스타일에 관한 책들로 유명하다. 크레임스의 부모는 독일 나치가 자행한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크레임스는 '겸손의 리더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겸손이야말로 진정한 리더가 갖춰야 할 중요 덕목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기업을 예로 들며 지도자라면 구석의 으리으리한 사무실에서 벗어나 직원들과 함께 호흡하고 호화 만찬 같은 과도한 지출은 줄이고 기업이 부여하는 여러 특혜도 포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열린 대화와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업 리더도 이처럼 의사결정 과정에서 평직원들의 의견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게 크레임스의 조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실용주의를 택하라고 권한다. 이는 교회 수장의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 듯싶다. 하지만 그동안 교황의 행적만 봐도 알 수 있듯 그는 현실을 직시하고 개인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결단을 내리곤 했다. 이를 경영인에게 대입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을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메시지가 된다.
교황은 교회가 군 야전병원처럼 운영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장에 직접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교황은 사제와 신도 모두에게 삶의 현장에서 경험을 넓히라고 독려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 삶을 이해하고 추상적인 원리주의에 발목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영인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보내며 직원에게 모범이 돼야 기업을 이끌 수 있다.
교황은 2000년 전 출범한 '브랜드'인 교회를 탈바꿈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세계 곳곳의 성당에서 100만명에 이르는 '중간 관리자'인 사제가 신도를 이끈다. 그러나 더 이상 먹히지 않는 비즈니스 모델, 감소하는 영업이익과 시장점유율, 인재 영입과 관리, 내부 체제의 충돌 등 여느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처럼 교황도 온갖 도전에 직면해왔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원래의 임무, 다시 말해 '핵심 가치'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신자는 물론 비신자에게도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뜻이다.
교황의 교회 개혁은 지금까지 성공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혁신가로 몸소 모범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용차인 '포프모빌'을 마다하고 2008년산 1600㏄짜리 포드 포커스 해치백만 몰고 다닌다. 숙소는 호화 관저가 아닌 성직자 50여명이 함께 머무르는 곳이다. 교황의 상징인 벨벳 망토는 하얀 신부복으로 대체됐다.
그는 결혼의 정의와 관련해 교회 안팎에서 논란이 거세지자 20쌍에게 혼배성사를 베풀었다. 이들 20쌍 가운데는 교회가 금기시해온 혼전 동거 커플, 심지어 아이를 낳은 혼전 커플까지 포함됐다. 교황으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다. 이전 교황들은 남성 신자의 발만 씻어줬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종교를 믿는 남녀의 발도 씻어줬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4월19일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실적 반등에 성공한 CEO'로 묘사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사례 연구에 그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을 정도다. 기업은 관료화하거나 비대해져 공룡처럼 지구에서 사라지기 십상이다. 그러니 살아남으려면 혁신가 교황에게서 배우라.
이진수 국제부장com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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