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석유화학(삼성종합화학ㆍ삼성토탈)과 방위산업(삼성테크윈ㆍ삼성탈레스) 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한다. 해당 기업들이 오늘 이사회를 열어 지분 양수도 안건을 의결했다. 국내 재벌 간 기업 인수합병(M&A)은 외환위기 때인 1999년 이뤄진 삼성자동차ㆍLG반도체ㆍ현대석유화학을 둘러싼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이후 처음이다.
이로써 삼성은 전자와 금융ㆍ서비스, 건설ㆍ플랜트로 재편하는 구조조정을 본격화하게 되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순환출자 구조 재편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정지작업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한화로선 주력인 석유화학과 방산 부문의 규모를 키우고 시너지 효과를 냄으로써 이 분야 1위 LG화학과 어깨를 겨루게 됐다.
두 그룹 간 기업 M&A는 정부 주도가 아닌 기업의 필요에 의한 것이란 점에서 한국 기업사에 남을 만하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조치나 김영삼 정부의 주력업종 제도, 김대중 정부의 빅딜 등 정부에 의한 강제적 구조조정은 관련 기업의 반발과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낳았다. 이와 달리 기업 간 상호이익이 맞아 떨어진 M&A는 사업 구조조정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제조업은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다시 일본과 중국의 협공을 받는 '신(新)넛크래커' 상황에 빠져 있다. 1990년대 한국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일본과 저임금에 기댄 중국에 끼어 고전했다. 2000년대에는 가격은 일본보다 낮고 기술은 중국보다 앞선 '역(逆)넛크래커' 상황으로 선전했다. 그런데 지금은 구조조정으로 기업 경쟁력을 높인 데다 엔저로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일본에 밀리고 급속한 기술력 향상과 넓은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중국에 치이는 형국이다.
이런 판에 대마불사론에 기대 몸집을 불리거나 여기저기 다 뛰어드는 문어발식 경영으론 경쟁력 향상은커녕 유지도 어렵다. 잘할 수 있는 실속 있는 사업을 선택해 집중하고 미래 성장동력을 찾아야 기업이 지속 가능하다. 조금 아쉽더라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과감히 떼어내 잘할 수 있는 국내 기업에 넘겨주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끼리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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