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도의 불덩어리가 이글이글 20만 손질에 원자로가 영글어
중공업·엔진 등 6개 본사·공장 자리 잡아
신한울 2호기 들어갈 원자로 및 가공설비 생산 한창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12.5m 높이에 4200t 무게의 프레스가 1000℃ 이상으로 새빨갛게 달궈진 거대한 쇳덩어리(잉곳)를 찍어 누른다. 그때마다 쇳덩어리 표면의 일부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떨어져 나가고 쇳덩어리는 서서히 형태가 갖춰져 간다. 단단한 고무찰흙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난 21일 방문한 두산중공업의 '핵심기지' 창원공장에서의 한 모습이다.
445만㎡로 여의도 면적 1.6배 정도의 크기(약 138만평)에 두산중공업, 두산엔진, 두산인프라코어, 두산 DST, 두산건설 등 6개 본사와 공장이 자리를 잡은 이곳은 두산의 첨단 기술력이 모두 결집된 핵심기지다.
이곳에서는 철을 녹이고 깎아 만든 30층 아파트 크기의 거대한 발전용 설비 가스터빈부터 바늘보다 작은 크기의 정밀부품까지 가리지 않고 생산한다. 각종 소재부터 발전플랜트와 발전설비, 해수담수화플랜트, 수처리설비, 풍력발전과 연료전지 같은 그린에너지 사업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
단조(프레스를 이용해 가열된 쇳덩어리를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금속로가공기술)공장에서는 거대한 프레스기가 '쉬이익~쿵'하는 굉음과 함께 쉴 새 없이 쇳덩어리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현대식 대장간'인 단조공장에는 1만3000t, 4200t, 1600t 등 총 3대의 프레스가 설치돼 있다. 선박에 들어가는 대형 엔진부터 원자력 설비까지 각종 산업의 첫 단추를 끼우는 기초 소재들을 직접 생산한다. 특히 1만3000t 짜리 프레스는 전 세계에 5개 밖에 없는 장비다.
공장 관계자는 "1만3000t 프레스는 65kg의 성인 남성 20만명이 누르는 힘을 내는 능력을 가진 설비"라며 "가공을 쉽게 하기 위해 작업 전 가열로에서 1000도에서 1200도까지 쇳덩이를 가열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내후년께 세계 최대 규모인 1만7000t 프레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두산중공업은 이를 통해 세계 정상급 설비를 보유한 기업으로 성큼 뛰어오른다는 계획이다.
인근의 또 다른 현장. 지름 6m, 길이 20m짜리 원자로 십여 개가 줄지어 바닥에 드러누워 있다. 아니 공중에서 돌고 있다. 최대 중량 800t에 이르는 원자로들을 용접하는 모습이다. 국내 유일의 원자력공장인 이곳에서는 국내 신한울 2호기에 들어갈 원자로 및 원자로 가공설비 생산이 한창이다.
곳곳에서 생산 중인 원자로와 증기발생기에도 저마다 붙은 이름표에는 '신한울', '신울진', 'UAE(아랍에미리트)' 등 행선지가 적혀 있다. UAE는 2010년 두산중공업이 따낸 UAE 브라카 원전에 공급할 4조7000억원 규모의 계약 물량이다. 두산중공업은 한국수력원자력과 신한울 1~2호기 원자로 설비 계약을 맺었고, 지난 4월엔 신한울 원전 1호기 원자로를 출하했다. 현재 국내에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 23기 모두 두산중공업이 제작ㆍ공급했다.
특히 이날 정부는 경북 울진군에 신한울 원전 1~4호기를 짓는 조건으로 울진군이 요구해온 8개 지역 종합사업에 28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15년 만에 신한울 원전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면서 현장 직원들도 신한울 원전 3~4호기 수주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만드는 공작기계는 일명 '마더머신(Mother Machine)'이라고 불린다. 자동차ㆍ조선ㆍ건설ㆍ항공 등 모든 업종에서 필요한 부품 소재기기를 만들 수 있는 '기계를 만드는 기계'이기 때문이다.
공작기계의 핵심은 바로 정밀성이다. 이 때문에 두산인프라코어 창원공장은 늘 같은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엔지니어들이 작업하는 '정밀가공실'은 통유리로 둘러져 있다.
공장 한 켠에는 공작기계로 만든 성인 남자 머리카락 두께에 해당하는 0.1㎜ 굵기의 금속 칫솔모부터 한자 성어와 붓으로 그린 듯한 초상화가 새겨진 금속판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칫솔의 경우 한 올 한 올 정확하게 재현돼 있는 칫솔모는 몸체에 이어 붙인 것이 아니라 철 그대로를 공작기계로 깎아 만든 작품이다.
두산인프라코어 관계자는 "두산인프라코어의 공작기계는 올해 세계 3대 산업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제품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할 정도로 기술력뿐만 아니라 디자인 완성도 측면에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조만간 한층 더 진화한 공작기계를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