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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의습격] 지치(知恥),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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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주창하는 어짐과 의로움과 예의바름과 지혜로움은, 거창하다. 인의예지를 아는 동물이라 뻐기지만, 그리 다른 동물에서 많이 나아가지 않은 존재들이 아니던가. 불교는 뜻밖에 깨달음의 처음을 부끄러움에다 두었다. 세상은 인간을 더럽게 만들고 잘게 만들고 사납게 만들기 딱 좋게 되어 있지만, 그것을 극적인 순간마다 구해주는 스파이더맨이 있는데, 그게 '부끄러움'이라 한다.


한 수행자가 길을 가다가 속옷이 풀려 땅에 떨어졌다. 그는 좌우를 돌아보고는 몸을 굽히고 조심스럽게 옷을 끌어당겨 입었다. 산이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 "당신은 참 이상도 하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옷이 벗겨졌다고 해서 그렇게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수행자는 말했다. "우선 당신이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나 또한 나를 보지 않았습니까. 거기다가 하늘도 태양도 땅도 숲도 나를 보았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가 어찌 수행의 옷자락이나 잡을 수 있겠습니까."

부끄러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참(慙)의 부끄러움이요 하나는 괴(愧)의 부끄러움이다. 참이란 자기를 스스로 부끄러워함이요, 괴는 사람에 대해 부끄러워 함이다. 참의 부끄러움은 하늘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요, 괴는 남이 알까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우린 뒷부끄러움만 알았지, 정녕 숨길 수 없는 부끄러움에 대해서는 염치가 없이 사는 편이다.


부처의 제자들은 부끄러움을 세밀하게 나눠놓았다. 능력이 모자라는 부끄러움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부끄러움이 있고 미혹이 생긴 부끄러움이 있고 죄를 숨기는 부끄러움이 있다. 모두 부끄러움이지만 그 질이 같은 것은 아니다. 가장 저열한 부끄러움은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부끄러움이라고 그들은 명시해놓았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일을 그르친다는 것.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기에 그 실상을 놓치고 그 부끄러운 일을 개선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부끄러움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부끄러움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인간적인 지혜를 돌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고, 그들은 가만히 속삭여준다.



'낱말의 습격' 처음부터 다시보기


이상국 편집에디터, 스토리연구소장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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