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보조금 정책, 3월에는 시장 과열에 보조금 많이 쓴다며 줄여라 압박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적다며 늘려라 사실상 '지시'
이통사들, 3월과 상황 다르지만 결국은 정부의 간섭이 문제
[아시아경제 이초희 기자] "스마트폰 가격이 시장과 장소에 따라서 몇 배씩 차이가 나고 싸게 사려고 추운 새벽에 수백m 줄까지 서는 일이 계속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2월17일 미래부·방통위 업무보고 발언)
연초 박근혜 대통령의 휴대폰 보조금 근절 발언 이후 이동통신업계가 올해 내내 보조금 전략수립에 한숨짓고 있다. 과다한 보조금을 줄이라는 정부의 압박은 상반기 내내 계속됐다. 하지만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이하 단통법)이 도입된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이번에는 보조금을 늘리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이동통신사들은 정부의 조변석개(朝變夕改) 보조금 정책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실제 지난 3월6일 최문기 당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은 이통3사 최고경영자(CEO)들을 긴급 소집했다. 최 전 장관은 "통신사업자들은 보조금 등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을 축소해야 한다"며 보조금을 줄일 것을 강조했다. 당시는 보조금 대란을 촉발시킨 이통사들에 대한 미래부의 제재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이통사들이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면서 소비자 간 극심한 차별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A이통사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강한 질책에 보조금을 줄이기 위한 이통3사의 대대적인 전략 수정이 있었다"며 "이제는 다시 늘려야 하는 상반된 고민을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B이통사 관계자는 "과거와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올 초에는 보조금을 많이 쓴다고 줄이라고 했다가 이제는 많이 쓰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통사들의 지적처럼 단통법이 도입되면서 정부의 보조금 정책은 반대로 움직였다. 지난 17일 이통3사와 제조사 CEO와의 긴급회동에서 최양희 미래부 장관은 단통법에 대한 소비자 불만을 이통사들이 낮은 보조금을 책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장관은 "단통법이 기업 이익만을 위해 이 법을 이용한다면 특단의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이는 사실상 보조금을 올리라는 얘기다.
C이통사 관계자는 "단통법으로 보조금을 못 받았던 소비자도 받게 되는 대신 지나치게 많이 지급됐던 소비자들은 하향평준화 됐다"며 "단통법이 정착해가는 과정인데 정부가 개입해 보조금을 올려라 내려라 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A사 관계자도 "지난 3월에는 시장 자체가 과열됐기 때문에 이통사 스스로도 자성이 필요할 때였다"며 "하지만 단통법이 도입돼 정착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 정부가 개입해 소비자만 혼란스럽게 됐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통3사는 지난 17일 미래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장의 CEO 긴급회동 이후 보조금 관련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제조사 역시 정부가 요청한 출고가 인하 등을 포함한 통신비 경감안에 대해 연일 대책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당장 이번 주 보조금 상황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전체 요금 정책을 바꾸더라도 시뮬레이션 기간과 정부의 인가까지 받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긴급회동에서 어떤 구체적인 얘기가 나온 것이 아니라 방향 잡기가 더 어렵다"며 "들여다보는 수준에서 검토를 할 뿐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이초희 기자 cho77lov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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