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의 세번째 작품...고양아람누리 아랑극장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공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오페라 '나부코'는 히브리인들이 바빌론에 강제로 끌려간 사건인 '바빌론 유수'라는 구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작품이다. 특히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노래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가 유명하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작품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음악적 시도와 파격으로 초연 당시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고양문화재단과 대전예술의전당은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는 고양아람누리 아람극장에서, 24일부터 26일까지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나부코'를 공연한다. 이 작품을 위해 제작진은 철저한 작품연구를 위해 음악, 종교, 고대사, 서양사 등 '나부코'와 관련된 각 분야의 전문가 강연과 활발한 토론을 통해 작품의 시대배경, 내용, 초연당시의 시대·정치적 상황 등에 대한 사전분석에 공을 들였다.
소프라노 박현주가 아비가일레로, 풍부한 성량과 탁월한 연기력의 바리톤 김진추가 나부코로, 2005년 국립오페라단 나부코 프로덕션에서 이미 안정적으로 자카리아 역을 소화했던 검증된 베이스 함석헌이 자카리아로, 정교한 발성과 마음을 움직이는 음색의 테너 윤병길이 이스마엘레로 캐스팅됐다. '나부코'는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는 작품인데다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어 캐스팅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여주인공 아비가일레 역 역시 소프라노 중 어렵기로 소문이 났다.
매년 공개 오디션으로 신예 성악가들을 발굴하고 있는 고양문화재단은 올해도 고양과 대전에서 2차에 걸쳐 한층 엄격하게 진행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차세대 성악가들을 소개한다. 나부코 역의 바리톤 이승왕과 아비가일레 역의 소프라노 오희진, 자카리아 역의 베이스 손철호는 역할의 난이도 관계로 주역 선발을 기대하지 않았던 관계자들을 놀라게 하며 당당히 배역을 거머쥐었다.
구약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나부코'는 종교가 없는 관객이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김태형 연출은 이를 보다 설득력있는 연출로 선보여 시대와 종교를 초월한 공감과 감동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나부코와 히브리인들의 충돌을 단순히 이교도와 기독교인의 대립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두 세계의 갈등으로 바라본다. 또 바빌론의 정복왕 나부코는 물질과 기계 문명을, 핍박받는 히브리인들은 정신 및 자연 문명을 대변하는 인물로 설정돼 있다.
무대장치도 새롭다. 영화, 애니메이션, 패션 등의 디자인 분야에서 자주 만날 수 있었던 스팀펑크 양식을 모티브로 국내 오페라 무대에서는 흔치 않은 비교적 거칠고 현대적인 느낌의 미장센을 선보인다. 구체적인 시대나 장소를 특정 짓지 않고 '언제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배경의 함축적이고 상징성 강한 무대와 빛의 질감을 살린 감각적인 디자인의 조명, 섬세한 디테일의 의상 등이 어우러져있다.
오페라 '나부코'는 주인공이 테너라는 공식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19세기 당시 오페라 계에 바리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합창의 비중을 높이는 등 과감한 음악적 시도로 신선한 파격을 선사한 작품이다. 테미스토클레 솔레라가 대본을 썼으며, 1842년 3월9일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초연된 베르디의 세 번째 오페라다. '나부코'의 성공은 전작 오페라의 실패 및 아내와 아이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절망에 빠져 있던 베르디가 재기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올해 '나부코'에는 오페라 대중화에 힘써온 정은숙 예술감독과 선 굵은 연주로 정평이 난 지휘자 장윤성 등 베테랑 군단이 호흡을 맞춘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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