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대차대조표 불황' 코 앞…빚더미 기업·가계, 너도나도 허리띠 졸라매기
[아시아경제 조목인 기자]중국 정부가 각종 미니 부양책으로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지만 정작 실물경제 살리기에는 실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국 경제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중국이 부채 급증과 수요 축소로 인한 이른바 '대차대조표 불황'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최근 진단했다.
대차대조표 불황이란 자산 가격 하락과 부채 증가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가계·기업이 빚 갚느라 소비와 투자를 줄여 나타나는 경기침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차대조표 불황이라는 개념을 처음 만든 노무라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는 1990년대 초 일본에서 발생한 시나리오가 중국에서 되풀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경기부양 차원에서 각종 규제 완화와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으로 금융기관에 돈을 뿌리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최근 5대 국영은행에서 810억달러(약 84조2400억원)의 유동성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환매조건부채권(PR) 금리를 전격 인하해 단기자금 조달 비용도 낮췄다.
그러나 정작 기업과 가계는 천문학적인 빚에 허덕이며 풀린 자금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정부의 통화정책 약발이 먹히지 않고 추가 경기둔화를 겪을 수도 있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모든 이가 꾸준히 소비하는 상황에서는 빚이 많아도 별로 문제될 게 없다"며 1980년대까지의 일본을 예로 들었다. 그는 "하지만 분위기가 반전되면 모든 이들이 지출과 투자를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쿠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일부 중국 기업의 경우 이와 유사한 길을 가고 있다"면서 "부채가 많은 기업은 시장의 수요 전망에 민감하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인민은행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 올해 3·4분기 대출 수요가 뚜렷이 둔화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 제조업계의 경기비관론은 확산되고 있다. 앞서 발표된 중국 은행권의 지난달 미상환 대출 잔액 증가율은 13.3%로 9년만에 최저치로 내려갔다.
지난 7월 중국 정부는 예대율 규정을 75%로 높였다. 은행이 더 많이 대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낮춘 것이다.
그러나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경기부양책이 나오면 은행은 채권 매입을 늘린다"면서 "정부가 푼 돈이 실물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자금 수요 둔화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빠른 부채 확대다. 스탠더드차터드 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251%다. 금융위기 때인 2008년 말의 147%에서 크게 상승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1990년대 버블 붕괴 당시 일본에서 목격됐던 급격한 자산 가격 하락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 우려에도 정부의 공격적인 공공사업 투자가 민간 수요의 약화를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업과 가계의 수요 둔화세가 빨라질 경우 중국 당국이 재정적자 확대 외에 다른 새로운 부양책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 등에서 중앙은행들의 공격적인 유동성 공급이 대출 확대를 통한 실물경제 회생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있다는 점을 중국 역시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목인 기자 cmi072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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