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고형광 기자, 김혜민 기자, 이장현 기자]금융당국과 이사회의 사퇴 압박에 꿋꿋이 버티던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이 결국 해임됐다. KB금융 이사회는 17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임 회장의 대표이사 회장직 해임안을 정식 의결했다. 지난 5월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싼 KB 내분 사태가 4개월여 만에 일단락된 셈이다.
이날 회의는 밤늦게까지 엎치락뒤치락하며 진통을 거듭했다. 일부 사외이사들이 "당국의 압박에 의해 임 회장을 해임하는 것은 KB금융을 망치는 길"이라며 반발했고, 이경재 의장을 비롯한 다른 사외이사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결단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격론 끝에 이사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임 회장의 퇴진이 불가피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해임안을 통과시키기 전 다시 한번 임 회장에게 스스로 물러날 기회를 주자는 의견에 나왔고, 이에 일부 사외이사들이 서울 반포동 임 회장 자택으로 가 자진 사퇴를 설득했지만 임 회장은 끝내 거부했다. 이사회는 결국 자정쯤 KB금융지주 본사에서 회의를 속개해 임 회장 해임안을 상정해 찬성 7표, 반대 2표로 통과시켰다.
◆ 새 CEO 선출 절차 착수 = 임 회장이 해임됨에 따라 KB금융 이사회는 조만간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고 차기 대표이사 회장 선출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회추위는 사외이사 9명 전원으로 구성되며, KB금융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회추위는 전·현직 KB금융 계열사 임원과 주주, 헤드헌팅업체 등의 추천을 받아 후보군 10여명을 추린다. 이후 3~4 차례의 회의를 거쳐 후보군을 3명 정도로 압축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면접을 실시해 최종 후보자를 선정하게 된다.
이 과정이 한 달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달 하순쯤 차기 회장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새 회장이 선출되면 지난 4일 자진 사퇴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의 후임을 뽑는 작업도 진행된다. 은행장은 KB금융 회장과 사외이사 2명으로 구성된 계열사 대표이사 추천위원회가 선정한다.
다만 이번 'KB 사태'가 지주 회장과 은행장간 권력다툼에서 비롯된 만큼 회장-행장 사이의 갈등을 줄이고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지주 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는 방안도 논의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차기 회장 선출이 당초 일정보다 조금 늦어질 수 있다. 또한 KB금융 이사회가 회추위를 맡는데에도 부정적 시각이 적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될 동안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던 현 이사회가 무슨 낯짝으로 또 다시 새 회장을 뽑을 수 있냐며 회추위 구성원인 사외이사들부터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분 사태가 일단락 됐지만 회장 선출 과정 또한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 차기 회장 누가 거론되나 = KB금융지주 차기 회장 후보에서 관료 출신은 일단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KB 사태의 중심에 '낙하산 인사'가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임 회장은 기획재정부 2차관을 지낸 고위 관료 출신이다. 이 전 행장도 금융연구원을 거쳐 넓은 의미에서는 '관피아(관료+마피아)'에 속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KB금융 내부 인사나 KB금융에서 퇴임한 인사가 후보군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회장과 행장 겸임 가능성도 제기되는 만큼 KB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입지전적 인물이 수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현직 중에서는 현재 KB금융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윤웅원 부사장(54)과 은행장 직무대행인 박지우 부행장(57)의 이름이 꾸준히 거론된다. 지난해 은행장 선임 과정에서 이 전 행장과 경합을 벌인 윤종규 전 지주사 부사장(59)도 하마평에 여러 차례 올랐다. 윤 전 부사장은 KB금융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국민은행 경영관리그룹 부행장을 지낸 김옥찬 전 부행장도 후보군으로 꼽히고 있다.
금융권에선 이번에는 'KB는 KB에 돌려주자'는 목소리가 우세하지만 외부출신 인사도 꾸준히 후보군에 거론된다.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66),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60)과 우리은행장 출신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65)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이 전 부회장은 지난해 임 회장과 함께 KB금융지주 회장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인 바 있다. 대구 출신으로 현 정권과도 친분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영업력 회복이 관건 = 회장과 행장의 대립을 생중계한 대가는 컸다. 이건호 전 행장이 지난 1일 아시아경제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장보다는 건전성 등 내실을 다지는 경영을 하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영업력 위축 우려를 일축했지만, 5대 시중은행 중 국민은행의 대출 시장 점유율은 2012년 말 25.6%에서 올해 6월 말 24.5%로 떨어졌다. 올 상반기 이자이익도 2조4510억원으로 전년동기 2조6370억원 보다 7% 감소했다. 회장과 행장을 중심으로 임직원이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보니 자연히 상품개발과 영업에 뒷전이었다.
해외진출 등 신사업 추진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국민은행은 신흥 금융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미얀마 진출을 두고 신한·IBK기업은행 등 국내은행 뿐 아니라 일본·중국계 은행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행장이 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 물러난 상황에서 국민은행에게 기회가 오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임 회장이 KB를 떠나게 된 만큼 LIG손해보험 인수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지배적이다. 애초 LIG손보 인수 건을 KB를 압박할 카드로 쓸 것이라는 예측이었지만 임 회장도 물러났고 LIG손보를 인수할 곳이 현실적으로 KB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인수적합성을 조속히 평가해 10월 중순경 결론지을 방침이다.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김혜민 기자 hmeeng@asiae.co.kr
이장현 기자 insi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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