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대한 해협을 두고 마주한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다. 일본은 한국이 부품 소재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그래서 무역적자를 많이 보는 나라다. 이는 양국 간 경제교류가 활발하다는 뜻이다.
문화 교류도 활발하다.한일축제 한마당 행사가 10년 간 열렸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4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벳쇼 고로(別所浩郞)일본 대사와 함께 한일축제 한마당 행사의 하나로 열린 한일 합동 공연을 관람한 것도 한일 간 활발한 문화 교류의 단적인 예이다.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은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이 먼저 대화를 재개하고 그 다음 해결책을 찾자는 제안에 대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되며 '의미있는 대화'가 돼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북핵 문제를 조율하고 있다.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이다.아베 신조 2기 정부 출범 이후 일본은 역사 퇴행의 행보를 거듭하면서 한국,중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아베 총리는 집권 1년 만인 지난해 12월26일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주변국을 자극했다.또 옛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검증해 고노담화를 사실상 훼손했다.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장급 협의를 세차례 열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우리 측은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을 일본 측에 요구했고 일본 측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4차 회의는 당초 8월 열기로 했다고 9월 초로 넘겼고 다시 이달 중순 열기로 미뤘지만 15일 현재까지 날짜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정부 당국자들은 "일정을 조율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우리 측이 일본 측에 건설적인,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을 요구한 만큼 준비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망은 부정적이다.우선,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 시비를 계속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14일 NHK 방송에 출연, 아사히(朝日)신문이 위안부 강제연행 관련 일부 과거 기사를 취소하고 사죄한 것과 관련, “일본 병사가 납치하듯 집에 들어가 위안부로 삼았다는 기사가 전세계에서 사실로 여겨지고, 비난하는 비(碑)가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또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 여성 작가 시오노 나나미 (鹽野七生·77)도 최신 10월호 ‘문예춘추(文藝春秋)’ 기고에서 “관계자 전원을 국회에 불러 청문회 내용을 TV로 방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문인 아사히는 지난달 5일 태평양전쟁 때 한국에서 징용노무자와 위안부를 ‘사냥’했다고 자전적 수기를 통해 고발한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2000년 사망)의 증언은 거짓으로 판단된다며 그의 발언을 다룬 과거 기사를 취소했다.
이처럼 아사히 신문의 오보가 쟁점화하면서 일본 내 보수우익 세력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이것이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등 국장급 협의 개최 여건은 극히 나빠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이번 주에 국장급 협의가 열린다고 하더라도 우리 측이 기대하는 '건설적인','의미있는' 결과를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이 경우 24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 총회에 참석해 할 기조연설에서도 양국 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바꾸지 않는 한 10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등 연말까지 이어질 다자회의에서 양국은 등을 돌릴 공산이 커 한일 관계 개선, 정상화도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4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벳쇼 대사와 나란히 ‘한일 축제 한마당’ 10주년 행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김덕수 사물 놀이패와 일본 ‘히가미 다이코’ 등 양국 전통 공연단의 합동 무대를 지켜본 뒤 장소를 옮겨 1시간 가량 차를 들며 '비공개 티타임'을 가진 것도 이 같은 사정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달 중 일본 도쿄에서 제 4차 위안부 관련 국장급 협의에 이어 다음 달 초 차관급 전략대화가 잇따라 열린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문제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양국 관계가 경제와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진전을 보인다고 해도 문자 그대로 '개선됐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양국 관계 개선을 가로 막고 있는 가장 큰 걸림돌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측이 전향적인 해법을 제시할 지가 열쇠임이 다시 한번 드러난다.
박희준 외교·통일 선임기자 jacklon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