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올해 20주년을 맞는 광주비엔날레가 4일 개막식을 열고 66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38개국 103명의 팀(작가)이 다섯 개의 대형 전시관에 '터전을 불태우라'는 주제로 41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여성과 성 소수자 등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계층 ▲아시아 및 아프리카 등 변방의 국가 ▲군대 등 권력과 소비사회에 대한 저항의식 ▲역사적 사건의 재해석을 반영한 작품들을 대거 만나볼 수 있다. 제시카 모건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은 "사운드나 움직임의 실천적 역동성을 추구하면서 현 상태를 '불태우는' 급진적 정신을 아우른다"며 "연극적인 요소,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가 펼쳐내는 거대한 현대미술의 집에 방문한 것처럼 보고 느끼고 진지하게 사유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축제에선 90% 이상의 작가들이 비엔날레에 처음 참여하는 신진 작가들로 구성돼 실험적인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다.
하지만 광주비엔날레가 추구한 '광주 정신의 승화'나 이번 축제의 표제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준비기간 동안 논란이 된 '대통령 풍자 그림'은 결국 비엔날레에서 전시되지 못했고, 해당 작가와 담당 큐레이터, 그리고 재단 대표까지 사퇴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불타는 거대한 집'…저항·다양성 드러낸 현대미술축제 =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동에 자리한 비엔날레 전시장은 대형 실내 전시장 뿐 아니라 광장부터 야외 공원까지 아우르고 있다. 총 103팀의 참여 작가는 권역별로 ▲아시아 47팀 ▲유럽 35팀 ▲북·남미 24팀 ▲아프리카 4팀 ▲오세아니아 1팀으로 구성됐다. 이 중 한국 작가는 총 20팀이다.
우선 광장에는 제레미 델러(국적 영국)의 대형 신작이 비엔날레 전시장 건물 전면 파사드에 그려져 있다. 불타는 건물에서 탈출하는 거대한 문어 그림이다. 주로 정치적 풍자나 비판적 이미지로 사용되는 문어는 광주의 역사를 반영, 식민권력의 장악력을 상징한다. 작가는 또한 미술관이나 갤러리라는 물리적 장소에 반대해 온 미술운동을 암시하기 위해 이 같은 작품을 건물에 남겼다.
전시장에선 우리나라 페미니즘 미술의 선구자인 윤석남이 한국의 신무용가 최승희(1911~1969년)의 오마주(hommage·경의)를 담은 작품 '최승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국 여성작가 이불의 다큐멘터리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불의 작품은 1989년 일본의 거리에서 괴물 형상 솜옷을 입고 행했던 퍼포먼스를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자신의 뉴욕 아파트를 실제 크기로 재창조해 방과 복도를 구성하고 실내공간을 복제한 포토리얼리음적인 벽지로 덮은 작품도 눈길을 끈다. 우르스 피셔(스위스)의 작품이다. 책, 사물, 작품, 가구, 가정용품 등 물건들을 그대로 옮겨왔지만 실제로는 완전 평면이다. 에두아르도 바수알도(아르헨티나)는 자신의 집이 화재로 소멸됐던 경험을 비춰 불에 탄 나무로 만든 집 형태의 작품 '섬'을 선보였다. 류 샤오동(중국)은 베이징 외곽의 군부대에 있는 인민해방군 병사 아홉명과 푸젠성 진먼현의 섬 전초기지에 주둔한 타이완 병사 아홉 명의 실물크기 초상을 중국-타이완 군인을 짝을 이뤄 2면화로 배치했다.
◆세계 미술 후원가 포럼 '눈길' = 4일 이곳에서 열린 국제 포럼도 미술계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 특히 다양한 국적의 미술 후원자들이 발제자로 나선 흔치 않은 행사였다. 터키, 중국, 샤르자, 이탈리아, 스위스 등에서 재단을 설립해 예술가들을 후원하는 재단 관계자들이다. 이 중 다이 지캉 상하이 젠다이 그룹 회장은 "중국과 아프리카는 긴밀한 동맹을 맺고 있다. 우리 그룹은 남아프리카에서 건축가들과 예술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며 "동양적인 산수(山水)를 건물에 반영하는 등 '산수 운동'에도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프란체스카 보르톨로토 포사티 바우어 호텔그룹 회장은 "베니스가 '비엔날레'에만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실은 연극, 음악, 무용, 문학 등 다양한 문화들이 산재해 있다"며 "광주비엔날레와 같은 축제와 파트너십을 통해 다른 문화, 다른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장들을 비엔날레에서도 마련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작가, 큐레이터, 대표까지 사퇴…아쉬움 많이 남아 = 아시아에서도 역사가 있고, 대표적인 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는 숙제가 아직 남아있다. 특히 20주년을 맞는 이번 행사 준비기간 동안 '대통령 풍자 그림'으로 논란과 잡음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해당 걸개그림인 '세월 오월'을 그린 홍성담 작가, 책임 큐레이터인 윤범모씨는 이미 전시 유보 시비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어 3일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까지 "개막 후인 5일 사퇴한다"고 발표를 했다. 이 그림은 이번 행사의 특별프로젝트 '달콤한 이슬-1980 그 후'에 걸릴 예정이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비하했다는 이유로 철거됐다.
이 대표는 "대표이기 전에 비평가 입장에서 홍 화백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당연하다"며 "그 그림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좀 그렇다"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또 "이런 문제가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특히 이 대표에겐 이 같은 일련의 과정들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짙다. "20년 전에 내가 광주비엔날레를 만들었는데 20주년 프로젝트를 준비하다가 물러난 게 아이러니하다. 앞으로 학자로서 책을 쓸 생각이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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