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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과 사랑에 빠졌다"…거미 여인의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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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밍 여제 김자인 "목표 정복 쾌감이 매력, 올림픽·AG 정식 종목 됐으면"

"암벽과 사랑에 빠졌다"…거미 여인의 키스 김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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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자일(등반용 로프)과 인수봉(북한산 봉우리).

국내 여자 스포츠클라이밍의 선두 주자 김자인(26)에게 '암벽 여제'라는 별명은 등반 도구와 이름난 봉우리 이름에서 머리글자를 딴 그의 이름이 예고한 운명과도 같다. 2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실내 암벽 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체구가 왜소했지만 당찬 힘이 느껴졌다. 그는 "원래 별명이 '거미 소녀'였다. 여제(女帝)라는 표현이 쑥스럽지만 책임감도 생기고 만족스럽다"며 웃었다.


스포츠클라이밍에는 리드(Lead), 볼더링(Bouldering), 스피드(Speed) 등 세 종목이 있다. 리드는 높이 15m 정도의 인공암벽을 제한된 시간(8분) 안에 누가 더 높이 오르는지 겨루는 경기다. 볼더링은 바닥에 안전 매트를 깔고 로프 없이 높이 5m 정도의 암벽(4∼5개)을 정해진 시간(5분) 안에 누가 더 많이 완등하는지 겨루는 종목이다. 스피드는 높이 15m 정도의 암벽을 오르는 속도 경기.

김자인은 리드가 주 종목이다. '홀드(hold·인공암벽에 설치한 손잡이 모양의 돌기)'를 손과 발로 붙들고 디뎌 가며 정해진 지점까지 등반한다. 홀드의 위치는 경기가 시작하기 전 심판진이 정한다. 매 대회마다 난이도가 제각각이라 코스를 재빨리 파악하고 지점마다 체력을 안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김자인은 "경쟁자를 이겨야 한다는 생각보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고 한계를 넘어 목표를 정복했을 때 얻는 쾌감이 클라이밍의 매력"이라고 했다.


경기장 밖에서 만나는 그는 수줍음 많은 숙녀다. 그러나 암벽을 오를 때는 냉정한 승부사로 탈바꿈한다. 탄산마그네슘 가루가 밴 손바닥은 굳은살 투성이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극복한 훈장처럼 여긴다. 김자인의 작은 체격은 경기를 할 때 불리한 조건이 될 때도 있다. 손과 다리를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홀드가 떨어져 있으면 위험을 무릅쓰고 점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김자인은 이런 불리함을 만회하기 위해 코어운동(엉덩이, 복부, 허리 등 척추부근 근육을 집중 단련하는 운동)과 팔 힘, 균형 감각을 기르는 훈련을 꾸준히 한다.


"암벽과 사랑에 빠졌다"…거미 여인의 키스 김자인[사진=올댓스포츠 제공]


홀드를 이용해 등반할 때는 리듬을 타야 스피드가 붙는다. 김자인은 음악에도 재능을 보여 초등학교 시절에는 성악가를 꿈꿨다. 그래서인지 리듬감이 뛰어나 암벽을 타고 오를 때 손과 발을 뻗고 발을 디디면서 몸을 위로 솟구치는 순간을 판단하는 감각이 절묘하다. 지난달 21일 프랑스 뷔앙송에서 끝난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리드 월드컵 3차 대회에서 우승할 때 중계방송을 한 현지 방송은 김자인을 '암벽 위의 발레리나'라고 칭찬하며 "다른 선수들이 어려워하는 동작을 우아하고 쉽게 해낸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22일 중국 하이양에서 열린 올 시즌 첫 리드 월드컵을 시작으로 세 개 대회 연속 우승했다. 2002년 12월 21일 말레이시아 아시안 유스 챔피언십부터 출전한 일흔 아홉 차례 국내외 대회 가운데 서른 두 차례나 이 종목 정상에 올랐다. 2010년과 지난해에는 리드 부문 월드컵과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다. 큰 오빠이자 코치로 김자인의 멘토 역할을 하는 김자하(30) 씨는 "어렸을 때부터 오빠들을 이기려는 승부근성이 강했다"며 "유연성이 뛰어나고 성격도 침착해 큰 대회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다"고 했다.


김자인은 등반가 가정에서 자랐다. 클라이밍 마니아인 아버지 김학은 씨(58)와 대한산악연맹 심판 출신인 어머니 이승형 씨(56)를 통해 자연스럽게 암벽과 친숙해졌다. 오빠 두 명도 클라이머로 활동하고 있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동기도 "초등학교 시절 오빠들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서 경기하는 모습이 부러워서"라고 했다. 남매의 이름은 모두 등반 장비와 관련이 있다. 자하 씨는 '자일'과 '하켄(암벽 등반에 쓰이는 쇠못)', 작은 오빠 자비(27) 씨는 '자일'과 '카라비너(암벽 등반가들이 쓰는 로프 연결용 금속 고리)'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


김자인의 목표는 국제무대에 있다. 그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큰 대회에 클라이밍이 아직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않아 늘 아쉽다"면서 "꾸준히 저변을 넓히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선수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자인은 다음달 9일 스페인 히혼에서 열리는 2014 IFSC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다.

"암벽과 사랑에 빠졌다"…거미 여인의 키스 김자인 프로필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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