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데스크칼럼]고흐와 프란치스코와 세월호

시계아이콘01분 51초 소요

[데스크칼럼]고흐와 프란치스코와 세월호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AD

지상에 인간의 몸을 하고 내려온 천사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중엔 분명 화가 반 고흐가 있을 것이다. 고흐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공연 중인 회사 옆 극장 벽에 내걸린 그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서 나는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살다 간 이 순결한 영혼의 천사가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온 정열을 다해 토해낸 비원을 듣는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처럼 세상의 가련한 이들을 비추는 빛을 갈구했으며 스스로 한 줄기 빛이 되고자 했던 이의 오열을 듣는다. 그 천사의 오열이 보는 이의 마음 속으로 들어와 슬픔으로 번지고 그 슬픔으로 우리의 영혼은 조금은 정화된다.


천상에서 내려오는 빛을 찾듯 고흐는 지상에서 올라오는 빛을 찾았다. 그건 바로 아기들이었다. 그에게 요람에 누워 있는 아기들은 '하느님이 우리의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모습으로 내려온 것(클리프 에드워즈)'이었다. 아기를 보살피는 것은 곧 하느님을 보살피는 것이었다.

"하느님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깬 어린 아기의 눈망울에서 바다보다 더 깊고 무한하며 영원한 것을 볼 수 있다(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처럼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가진 이가 한국엘 왔다 갔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은 곧 낮은 이, 연약한 이들에 대한 것이었다. 그는 어린이를 사랑하는 것이 낮은 이를 높이는 것이며 그것이 곧 모든 이를 높이는 것임을 보여줬다. 연약한 이를 돌보는 것이 모든 이를 돌보는 것이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스스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 됨으로써 오히려 지상 교권의 최고 권위를 얻는 그 역설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선물한 것은 그 자신의 선함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또한 선하게 해 준 것이었다. 시복미사가 열렸던 16일, 광화문 광장 옆 능소화 나무 아래에서 능소화 꽃처럼 붉은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하는 교황을 보러 모여든 사람들을 보면서, 새벽부터 나와 뙤약볕 아래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왠지 모를 눈물이 솟구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교황이 아니라 연약하고 작은 이를 아끼는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보았다. 내가 봤던 것은 사람들이 본래의 선한 마음을 함께 깨우는 진정한 '부흥회'였다.

그 부흥회는 우선 종교의 소명을 생각게 했다. 종교 아닌 종교가 된 이 시대 종교의 역할과 권능을 일깨워줬다. 그리고 또한 거기에 정치의 본질이 있음을 깨우쳐 줬다. 그 연민과 긍휼이 설령 정치의 모든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정치의 뿌리이며 출발임을 보여줬다. 그 날의 미사는 성과 속이 만나는 자리였으며 종교와 정치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고흐와 프란치스코가 우리에게 얘기하는 것처럼 아이들의 죽음은 하느님의 죽음이다. 더욱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한 아이들의 죽음,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했던 아이들의 죽음은 한 사회 자체의 죽음이다. 그럼에도 어린 학생들의 죽음을, 그리고 지금도 저 차가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일곱 살 어린 아이의 원혼을 잊어버리자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럼으로써 그 아이들을 두 번 죽이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규명되지 않은 과거는 끊임없이 그 사회에 '청구서'를 내민다는 것이다. 과거를 부당하게 봉인하려는 것은 오히려 과거를 영원한 현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또는 교종)이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는 사람들 앞에서 온화한 표정으로, 그러나 엄하게 말했지 않는가.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아이들의 죽음의 원혼을 푸는 것, 그것이 정의의 출발이다. 그 정의가 이뤄져야 비로소 우리 사회의 진정한 평화가 올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지상에서 저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조금은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