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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55]생존 할머니 증언<5> 김양주·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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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보고서 55]생존 할머니 증언<5> 김양주·김○○·김○○ 김양주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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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주상돈 기자] #13. 김양주 '가정폭력 시달려 엄마와 집 나왔다 끌려가' 

1924년생인 김양주 할머니는 경상남도 마산에 살고 있다. 어릴 적 아버지의 가정 폭력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집을 나왔다가 위안소로 끌려갔다. 지난달 만난 할머니는 치매 초기 현상에 어지럼증, 고혈압, 당뇨 등을 앓고 있었다.


60대인 수양아들은 6개월 전 한쪽 다리에 혈전증이 심해져 무릎 아랫부분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할머니는 "기가 차 죽겠다. 젊은 사람이 저러니까 내가 더 마음이 아프다"며 속상해 했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30분씩 이들의 집을 찾아 설거지, 요리, 빨래 등 집안일을 해주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김 할머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18일) 명동성당에서 집전하는 '평화와 화해의 미사'에 참석했다.


[위안부 보고서 55]생존 할머니 증언<5> 김양주·김○○·김○○ 김○○ 할머니.

#14. 김○○ '돌아와 결혼도 했지만, 가족들에게조차 쉬쉬'

1932년생인 김○○ 할머니는 피해자들 가운데 비교적 젊은 축에 속한다. 1년가량 위안소에서 고초를 겪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위안부 피해자들 대부분이 학교를 다닐 기회를 얻지 못한 반면 김 할머니는 귀국 후 중학교에 입학했다. 이후 결혼도 해서 아이도 낳고, 지금은 손자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평범한 '할머니'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경상남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친구나 지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도 본인이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비밀에 부치고 있다. 학교 동창을 비롯해 지역사회에 인맥이 퍼져 있어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가족들이 감내할 고통을 염려한 때문이다.


[위안부 보고서 55]생존 할머니 증언<5> 김양주·김○○·김○○ 김○○ 할머니.

#15. 김○○ '12살에 일본으로 보내져, 놀러가는 줄 알았지'


김○○ 할머니는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로 이주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2살에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본으로 '송출'됐다. 할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는 놀러가는 줄 알았지"라고 증언했다. 비행기 부속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9개월간 일을 하다가 군인 수용소 근처의 큰 건물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게 됐다.


할머니는 현재 경기도의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여동생이 할머니의 손발이 돼주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가 나면 버럭 호통을 치고 흥에 겨우면 큰 소리로 노래도 부를 만큼 에너지가 넘쳤던 할머니는 지금은 기력이 약해져 이마저도 힘들다고 한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기획 시리즈 진행 중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명이 공식 인정돼 시리즈 제목을 '위안부 보고서 54'에서 '위안부 보고서 55'로 바꿉니다.


▶'위안부 보고서 55' 온라인 스토리뷰 보러가기: http://story.asiae.co.kr/comfortwomen/




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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