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준용 기자]프란치스코 1세가 집전하는 시복식 두시간 전인 16일 9시경, 행사장소인 서울 광화문 광장은 월드컵 한국 경기 응원장을 방불케 했다. 교황을 기다리는 시민들은 깔판과 돗자리를 깔고 일행과 무리 지어 모여 앉았다. 준비해온 김밥, 과일 등을 나눠먹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광장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을 보며 행사시작을 기다렸다. 스크린에는 '윤지충 바오로 및 동료 순교자 123위'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광화문을 찾은 이현우(59·서울 문정동) 씨는 "오전 4시 50분에 왔다"면서 "교황님이 이번에 오면 언제 올 지 모른다. 다시 볼 기약이 없으니 일찍 나와 기다린다"고 했다.
경찰은 행사장 안과 밖을 방호벽으로 나눠 초청받은 사람만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초청장이 있는 17만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경찰은 수백여명의 인력을 동원해 방호벽 밖에 별도로 '폴리스 라인'을 설정했다. 또 시민이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약 2미터 간격으로 지키고 섰다.
경찰이 시민을 통제하는 과정에서 곳곳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폴리스 라인 밖에서 가까이 붙어 행사를 지켜보고자 하는 시민들이 경찰에 제지를 당한 것.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 인근에서 인천지방경찰청 이모 경감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은 시민들에게 "이동을 부탁드린다"고 하자 한 시민은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고 되물었다. 이 경감은 "어디라고 말씀을 못드린다. 종로 거리 쪽에 비 초청객을 위한 자리가 마련돼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교황에게 위해를 가할지 모르고 경호하기 힘든 탓이다"고 하자 고모(30)씨를 비롯한 시민들은 "우리가 위해를 가한다는 말이 불쾌하다. 통행을 막는 게 아니라 단지 모여있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아쉽다"고 하며 말다툼을 했다.
광화문 동아일보 건물 앞에서 역시 경찰에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받은 이마리스테라(58)씨는 "초청받지 않아도 주변에서 자리만 잘 잡으면 볼 수 있을 줄 알았다. 자리를 잡으려고 경기도 광명에서 일찍 나왔는데 어디로 가라고 말해주지 않고 옮기라고 해서 아쉽다"고 했다.
인파가 몰리다보니 화장실 부족 문제도 생겼다. 광화문을 찾은 시민들이 워낙 많아 공용화장실 이용이 어려웠다. 시에서 곳곳에 간이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이마저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행사장을 찾은 신자와 시민은 여자가 주를 이뤘기에 여자화장실 앞의 줄만 길게 늘어서고, 남자 화장실 앞은 한산한 진풍경도 벌어졌다.
시민들은 화장실 부족 탓에 인근 카페에 화장실로 향했고 인근 카페 세곳 이상의 화장실 앞에 장사진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도 실랑이가 생겼다. 이모(25)씨를 비롯한 인근 카페 직원은 화장실로 온 시민에게 "시청에서 미리 양해를 구한다고 연락받은 것은 없다. 인근 카페 화장실을 이렇게 이용하면 카페를 이용하는 고객이 화장실을 전혀 이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하며 공용화장실을 이용해 줄 것을 부탁했다. 시민들은 "공용화장실이 꽉 차 죄송스럽지만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고객이 화장실을 이용하려 하면 줄을 서지 않게하고 먼저 들여보내겠다"고 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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