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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프런티어]한경애 "내 디자인 유통시킬 패션 권력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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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퍼스트 무버'로 통하는 한경애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
남성복 편집매장 시리즈 브랜드로 대박 행진
재고 리폼해 사회 환원 "명품 브랜드화가 꿈"
일-가정 적절하게 잘 할 수 있는 능력 키워야


[W프런티어]한경애 "내 디자인 유통시킬 패션 권력 갖고 싶었다" 한경애 코오롱인터스트리 상무가 리폼으로 재탄생한 래코트 블라우스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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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사진=최우창 기자] 매년 1ㆍ6월 이탈리아에서 개최되는 '피티 워모(PITTI UOMO)'는 전 세계 패션 종사자라면 꼭 참가해야 하는 남성복 최대 규모의 국제 전시회이다. 특히 피티 워머는 현장에서 세계 유수의 브랜드ㆍ패션 기업과 수주 상담을 진행하는 전시회여서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란 평가를 받는다. 이곳에 한국 최초로 진출한 브랜드가 남성복에 편집 매장 개념을 도입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시리즈'다. 2012년 1월 첫 진출 후 매 시즌 빠지지 않고 참가해 영국과 러시아 바이어들로부터 적극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한경애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가 바로 이 브랜드의 총괄 책임자다. 2006년 시리즈 브랜드를 출시한 이후 디자인은 물론 기획, 유통, 영업 등 사업 전 분야를 지휘하고 있다. 디자이너 출신이, 그것도 여자가 사업부장 자리까지 꿰찬 덕에 그녀는 패션업계의 '퍼스트 무버(first moverㆍ선도자)'로 통한다.


그녀가 밝힌 퍼스트 무버의 비결은 간단 명료하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한 결과예요." 하긴,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보다 더 나은 묘책이 어디 있을까 싶어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한 상무가 몇 마디를 보탠다. "디자인실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어요. 휴일이면 백화점이나 가두 매장을 둘러보며 고객을 직접 만났습니다. 스스로 '디자이너라서' '여자라서'식의 한계를 그으며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제 디자인을 성공적으로 유통할 힘, 권력을 갖고 싶었어요. 그런 모습이 열정적으로 보였나 봐요."

◆퍼스트 무버 비결은 "열정ㆍ도전ㆍ차별성"


그녀가 처음부터 남성복 디자이너 겸 마케터를 꿈꿨던 것은 아니다. 1985년에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할 무렵 아동복으로 유명한 삼도물산의 채용 공고가 떴다. 의상학과 졸업 후 여성복 디자이너를 꿈꾸는 것이 당연시됐던 때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걷지 않는 새로운 길인 데다, 삼도물산 자체가 1960년 설립돼 국내 최초로 의류를 수출한 전통 있는 패션기업인 만큼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곳으로 여겼다. 하지만 당시 아동복은 디자인보다는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도자를 자처했던 그녀도 곧 답답해졌다. 다양한 디자인과 색으로 유행을 창조하는 '한경애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그렇다고 여성복으로 뛰어들긴 늦은 시기였다. 경쟁이 치열한 여성복 분야에서 뒤늦은 출발을 해 최고가 될 자신이 없었다. 그때 그녀 눈에 들어온 분야가 남성복이었다.


"남성복 태동기였던 1988년도에 연을 맺었어요. 지금 들어가면 선도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태동기 사업이 다 그렇듯, 국내 남성복 환경도 순탄하진 않았다. 지금이야 가슴의 볼륨을 살리고 허리선을 날씬하게 하는 등 남성의 몸매를 부각시키는 다양한 디자인이 선보이고 있지만 당시엔 밋밋한 실루엣이 남성복의 원래 모습인 것처럼 인식됐다. 그녀는 매 계절 바뀌는 여성복과 달리 단단한 고정틀에 갇힌 남성복에서 또 한 번 슬럼프에 빠졌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여성복에 비해 변화가 더딘 남성복 시장의 환경 차이를 빨리 극복하지 못해 허우적거렸다"고 했다. 또다시 여성 캐주얼로 눈을 돌렸다. 3년. 남성복의 선도자를 꿈꿨던 그녀가 한눈을 판 기간이다.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물거품 만들 수 있을 만큼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 한경애를 있게 한 시간"이라고 했다. 빠른 속도로 바뀌며 유행을 이끄는 여성 캐주얼 시장에서 남성복의 지향점을 깨쳤기 때문이다. 남성복에는 쓰지 않는 색과 정형화된 형식을 깨면 천편일률적인 남성복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으로 봤다. 남성복 사업을 주도했던 코오롱인더스트리로의 이직을 결정한 것도 이 같은 판단이 바탕이 됐다.


2006년 자체 디자인한 옷에 다양한 수입 브랜드를 함께 만날 수 있는 편집매장을 개념화해 시리즈란 브랜드를 내놨을 때만 해도 주변에선 '이게 되겠어?'라며 부정적으로 봤다. 신사동 도산공원에 매장을 냈다가 문을 닫기도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패션과 문화라는 거대한 담론을 만들기 위해 문화 캠페인을 함께 전개하며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는 2030세대를 공략했다. 그녀의 전략은 통했다. 브랜드 출시 후 5년여 정도 고전했지만 지금 시리즈는 매 시즌 내놓는 제품 대부분이 완판될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남성복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시리즈를 패션 브랜드를 넘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키우는 게 한 상무의 다음 과제다.


◆또 다른 도전 '윤리적 패션의 퍼스트 무버'


국내 남성복 시장의 1세대인 한 상무가 요즘 새롭게 도전하는 분야는 리폼(재활용) 분야다. 구체적으론 브랜드 이미지 관리를 위해 불태워 없어지는 3년차 이상된 재고 옷들의 재활용 여부다. 그녀는 "디자인 개념을 바꿔 새롭게 접근하자고 생각하니 뜻밖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며 '래코드' 브랜드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래코드는 기업의 자원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인 것이죠. 쉽게 말해 재고상품으로 버려지는 옷들은 장애인이나 미혼모 단체 등의 해체작업과 전문 봉제사의 수작업 기술, 독립 디자이너 및 코오롱인더스트리 디자이너들과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옷으로 선보여 사회환원하는 겁니다." 캠브리지, 헨리코튼, 시리즈 등 코오롱인더스트리의 패션 브랜드 옷들은 물론 코오롱스포츠 텐트 등도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래코드의 원피스, 재킷, 바지, 가방 등으로 재탄생했다. 최근에는 자동차의 에어백을 활용한 옷도 디자인했다. 패션 대기업이 브랜딩을 통해 리폼 옷을 선보인 사례는 해외에서도 처음이다. 2012년 출시한 래코드가 '윤리적 생산과 소비'를 실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경쟁사들도 속속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백화점에서는 업사이클링 브랜드로 가치 소비개념을 담고 있는 래코드 팝업매장 오픈에 대해 적극적인 편이다.


윤리적 패션의 퍼스트 무버를 자처했지만 한 상무에게도 고민은 있다. 그녀는 "사회환원 차원에서 시작됐지만 현실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에서 매년 적자를 감수하면서 지속하긴 어렵다"며 "적자 규모를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내놓은 전략이 래코드의 '명품 브랜드화'다. 샤넬, 구찌처럼 제품에 가치를 입혀 세계적인 명품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하겠다는 게 그녀의 포부다. 모든 제품을 한정판으로 생산해 세상에 하나뿐인 옷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도 이 전략에서다. 베를린 캡슐쇼,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 등 세계 아트 페어에 진출한 것도 래코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일환이었다.


◆"모두 잘할 수 없다…포기할 것은 포기해라"


디자이너로 출발해 사업부장, 브랜드총괄책임 임원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녀도 한때 '디자이너' '여자'라는 이유로 주춤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남성들이 갖지 못한 소프트함을 키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면서 일에만 몰두했다. 예민한 시기, 일하는 엄마에게 섭섭해할 수 있는 아들을 직접 회사로 데려와 "엄마가 하는 이 일도 중요하다"며 이해를 구하기도 했다.


"포기할 것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녀에게 일과 가정의 양립으로 고민하는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해달라고 했더니 의외의 답을 했다. 다소 당황스러워하자 그녀는 "일, 가정 모두를 잘할 수는 없다. 완벽하게 잘하려고 아등바등하기보다는 내가 이만큼 일에 전념할 테니, 가족들이 좀 도와달라고 진솔하게 부탁하는 게 현명하다. 적절하게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사진=최우창 기자 smic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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