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바리 보험퀸의 22년 전쟁
한화손보 최초 여성 임원 김남옥 상무
중졸 꼬리표 괴로울땐 지리산 오르며 마음 다졌다
연도대상 11번에 상무승진까지
[아시아경제 이은정 기자] 어느 날 문득, 명함이 갖고 싶어졌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 며느리가 아닌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지닌 친구를 보면 부러웠다. 결혼 이후 오로지 자신을 뒤로 한 채 한 가정을 위해 살아왔다는 그녀. 어렸을 때 꿈꿨던 현모양처처럼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에 충실했다. 3년 동안 수족을 못 쓰는 시할머니를 극진히 봉양해 효부상을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난 누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닌 나의 존재감은 찾을 수 없었다. 처음으로 집 밖 세상이 궁금해졌다. 두렵기도 했다. 중졸이라는 학력과 서른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직장경험마저 없었던 그녀를 원하는 곳은 없었다. 그 무렵 보험영업을 하던 사촌 언니가 같이 일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차이조차 모를 정도로 보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올해로 예순. 지난 22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한때 현모양처를 꿈꿨던 그녀는 지금 수많은 설계사와 지점장들 사이, 한 가운데 앉아 있다. 바로 김남옥 한화손해보험 상무(부산지역본부장) 얘기다. 김 상무는 지역단 평가기준 2012년 전사 2위, 2013년 1위의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4월 한화손보 최초의 여성 임원이 됐다. 특유의 친화력과 섬세함을 바탕으로 엄마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는 게 그녀의 최고 강점이다. 때론 설계사와 지점장들을 일사불란하게 진두지휘하는 카리스마를 뽐낸다.
"이젠 후배 양성이 제가 할 일이죠"라며 활짝 웃는 김 상무. 성ㆍ학력 등의 단단한 벽을 깨고 손해보험업계의 'W(여성)-프런티어(선구자)'가 될 수 있었던 그 비결을 하나둘 털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특채 출신"…학력 콤플렉스 극복 비결= 1992년 경남 하동에서 보험 대리점주로 첫발을 뗀 김 상무가 한화손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4년 4월이었다. 당시 한화손보의 전신인 신동아화재가 우리 자본으로 만든 최초의 손해보험 회사라는 것을 알고 막연히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114를 통해 가장 가까운 한화손보 지점을 문의해 이력서를 냈고 일원이 됐다. 필연 같은 일이었다.
한화손보에서 설계사로 시작한 그녀는 영업소장, 지역단장, 지역본부장 등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렇다고 늘 수월했던 것은 아니다. 워낙 목표의식이 뚜렷하고 성실해 보험 영업 실적이 우수했지만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중졸 출신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럴 때면 홀로 지리산 산행에 나섰다. 정상까지 묵묵히 걸어가며 "학력은 회사에 입사하긴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나는 능력을 인정받아 특채로 들어왔다"를 수없이 되새겼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떼다 보면 어느새 자신감은 100% 충만됐다.
"금융 쪽 관리직은 대부분 4년제 대졸 출신입니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SKY대(서울대ㆍ고려대ㆍ연세대 )처럼 좋은 학교를 나와야 하죠. 이 같은 상황에서 학벌에 신경을 쓰면 힘들 수밖에 없어요. '나는 능력을 갖췄기에 현장에서 특채로 발탁됐다'고 세뇌하며 학벌 콤플렉스를 이겨냈습니다."
학벌 콤플렉스를 극복하자 김 상무는 보험영업 관리자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지난해 부산지역본부의 실적이 전국 1위에 오르는 등 관리자가 된 이후 11번이나 연도대상을 차지했다. 연도대상은 매년 전년 실적을 기준으로 우수 보험설계사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한 번만 받아도 가문의 영광이라고 할 정도로 수상하기 힘든 상이다. 김 상무는 지점장을 하는 12년동안 6번을, 단장을 한 8년동안 5번을 받았다. "관리자 중 연도대상을 한번도 못 받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받은 것은 운이 좋았던 덕분"이라며 겸손한 면모를 보였는데 사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억척스럽다.
◆꿈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라= "제 좌우명은 '1%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다'입니다. 남들이 생각할 때 저 일은 안된다, 어렵다고 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꿈을 간절하게 품고 도전한다면 성과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지난해 창원지역단 분할 사례가 그의 억척스러움을 잘 보여준다. 2012년 1월 창원지역단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김 상무는 지역단 분할을 목표로 잡았다. 인구가 100만명이 넘는 데다 시장성도 울산광역시와 맞먹을 정도로 좋은 곳인 만큼 지역단을 창원 외 마산에 한 곳 더 만들어야겠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정작 창원지역단 직원들은 시큰둥했다. 전 직원을 모아놓고 이 같은 목표를 밝혔지만 '설마', '그러고 말겠지' 라며 부정적으로 봤다. 이미 거쳐 간 단장들이 의례적으로 도전했던 오래된 과제였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았다. 보험설계사, 지점장, 총무 등 같이 일하는 전 직원들과 목표 과제를 공유하며 각각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정하며 '꿈을 같이 이뤄내자'고 설득했다. 특히 보험설계사들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분위기 만들기에 주력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년만에 지역단 분할 규정을 충족했고 실무 과정을 거쳐 작년 5월1일자로 마산지역단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한화손보 최초의 지역단 분할이었다.
"전략적으로 지역단을 나눈 사례는 있지만 우리처럼 규정에 맞게 실적을 올려 성공한 사례는 없었습니다. 저 혼자였으면 절대 못할 일이었죠. 전 직원들과 목표를 공유하고 소통한 덕분입니다."
그녀가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있어서라는 게 회사 안팎의 평가다. 항상 계획에 의해 영업 목표를 잡고 타이트하게 조직을 관리한다는 설명이다. 김 상무 역시 "못하는 사람은 항상 구실을 만들지만 하려는 사람은 늘 방법을 찾는다"면서 "나 역시 방법을 잘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항상 꿈을 갖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올해 목표는 후배 양성= 보험설계사 대다수는 여성이다. 다른 업종보다 절대적으로 여성들이 많은 직군이다. 위로 올라가면 달라진다. 대다수의 여성 설계사를 이끄는 관리직은 다수가 남성이다. 한화손보 첫 여성 부장, 손보업계 최초 여성 본부장 등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김 상무도 당연히 관리자 모임에서 홍일점일 수밖에 없다. 이렇다 할 여성 롤모델도 없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혼자 해결하려 부단히 애썼다. 쉽게 올 길을 돌아서 오기도 했다. 여성 후배들이 자신의 전철의 밟지 않도록 하는 게 김 상무의 바람이다. 특히 무언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거나 마음이 편치 않을 때 상담을 청할 선배 여성이나 여성 관리자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엄마의 리더십 얘기가 있듯 관리자도 여자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엄마는 질책을 하면서도 가슴으로 안아주는 분이죠. 관리자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성 후배들이 혼자 판단하고 쉽게 포기하기보단 선배들과 의논하고 협조해 함께 멀리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여성 후배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스스로 그은 한계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혹시나 학벌이나 여자라는 이유로 움츠리기보다는 과감한 도전을 해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육아도 집안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나 가정 모두에서 완벽하려고 아등바등하기 보단 가족들을 조력자로 만들어 장기전에 대비하는 게 지혜일 수 있습니다."
김 상무는 아들 둘을 둔 엄마다. 초등학생 아들을 떼 놓고 보험 영업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도 협조를 잘 해 줬다. 시아버지도 종갓집 맏며느리의 외도(?)를 응원해줬다. 그녀 역시 일 할 때는 일에만 몰두했고 집에서는 육아, 가사에만 집중하며 가족들을 든든한 조력자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일 하는 여성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족들의 이해와 응원이 필요합니다. 여성, 가정이라는 한계에 갇히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간절해져야 합니다. 연말께, 5년 후, 10년 후 어떤 모습이 될지 지금 이 순간 상상해보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김남옥 상무는…
▲1955년 경남 하동 출생
▲1977 양보중학교 졸업
▲1994년 한화손보 사원 입사
▲2006년3월~2009년12월 경남ㆍ부산지점 지역단장
▲2010년1월~2013년11월 경남지원단장
▲2013년12월~ 부산지역본부장
▲2014년4월 한화손보 첫 여성 상무(보) 승진
이은정 기자 myb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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