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 # "뉴스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서울 광화문 일대에선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의 정상과 국민들이 참석한 '한중일 8ㆍ15 기념식'이 성대하게 거행됐습니다. 한중일 정부와 시민이 8ㆍ15 기념 공동행사를 개최한 것은 이번이 사상 처음입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동북아 3개국이 지역 안정과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자고 강조했습니다. 아베 신조 (安倍 晋三) 일본 총리도 과거 잘못된 침략전쟁과 역사왜곡에 대한 철저한 반성 속에 지역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충실히 임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8ㆍ15는 동북아 3개국에 각기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한국은 일제치하에서 벗어난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고, 일본에겐 패전 기념일이다. 중국은 이보단 다소 늦은 9월3일을 항일 승전기념일로 삼아 기념해오고 있다. 그래도 모두 1945년 8월15일 일본의 2차 세계대전 항복선언을 같은 뿌리로 삼고 있다.
이런 차이만큼 한중일이 공동으로 8ㆍ15행사를 치른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해보인다. 더구나 요즘같은 분위기엔 더더욱 가당치도 않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일본의 우익들이 발호하며 연일 역사 왜곡 망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래도 아주 실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벨기에선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영국,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 각국의 정상들과 왕족은 물론 당시 전쟁을 일으켰던 독일의 요아힘 가우크 대통령도 함께 연단에 올랐다. 각국 정상들은 모두 한결같이 "100년 전 잘못을 되풀이해 전쟁이 일어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중의 백미는 영국을 대표한 윌리엄 왕세손의 연설이었다. 그는 연단과 시민들을 향해 "우리는 지난 세기에 한번 이상 적(敵)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친구이자 동맹입니다"라고 말했다. 과거 전범국이었던 독일도 다른 나라와 다름없이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협력해나가야 한다는 용서와 포용의 메시지인 셈이다.
일본 아베 총리는 틈만 나면 '일본이 정상국가가 돼야 국제 사회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전범국가인 일본에 씌워진 역사적, 국제정치적 족쇄를 풀고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발버둥이다. 현재의 일본 우익 지도자들에겐 1차 세계대전 기념식에서 친구이자, 동맹국으로 대접 받는 독일이 더없이 부럽게 보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이 걸었던 처절할 정도의 반성과 그를 통한 신뢰구축만이 정답이다.
한중일 8ㆍ15 공동 기념행사가 실제로 열리고 다른 피해국가들이 일본을 '친구이자 동지'라고 불러줄 수 있어야 정상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일본의 역사 역주행 속에 갈수록 거칠어지고 위험해지는 동북아의 주변 정세를 보면서 하루 속히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그저 바람일 뿐이지만.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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