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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안겨다준 공포, 욕망 그리고 광기…영화 '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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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기획·제작, 심성보 감독 작품…연우무대 동명의 연극 원작

안개가 안겨다준 공포, 욕망 그리고 광기…영화 '해무' 영화 '해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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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1998년.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전라남도 여수의 한 작은 마을에도 몰아닥쳤다. 한 때는 여수 앞바다를 주름잡았지만 지금은 낡아빠져 처분 대상이 된 '전진호'의 선장 '철주(김윤석)'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고기는 잡히지 않고, 배는 팔릴 위기에 처하고, 바람난 아내에게 그는 투명인간이다.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는 처지의 그는 자신에게 유일하게 남은 배를 지키기 위해 덜커덕 조선족 밀항 제의를 받아들인다.

이 사실을 모르고 전진호에 올라탄 선원은 총 다섯명. 빚쟁이들에게 쫓겨 배에 숨어사는 정많은 기관장 '완호(문성근)', 선장의 명령을 충실하게 따르는 갑판장 '호영(김상호)', 돈에 눈이 먼 롤러수 '경구(유승목)', 성적 욕망에 사로잡힌 선원 '창욱(이희준)', 수더분한 성격의 순박한 막내 '동식(박유천)'까지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이들이지만 배 위에서는 한 가족과 다름없다.


파도를 헤치고, 고기를 잡다가 동식의 다리가 잘릴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도 헤쳐 가던 이들은 폭풍우 치던 밤바다 한 가운데서 조선족을 태운 배를 만난다. 선원들은 독단적인 선장의 결정에 불만을 내비치면서도 결국 밀항을 돕는다. 하지만 이들에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배 위의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치닫는다. 바다 안개에 갇혀 망망대해에서 잠시 멈춰선 '전진호', 좁고 제한된 공간에서 극단의 상황에 처한 선원들이 보여준 추악함과 나약함, 광기가 서스펜스와 스릴을 제공한다.

안개가 안겨다준 공포, 욕망 그리고 광기…영화 '해무' 영화 '해무' 중에서


영화 '해무'는 극단 연우무대의 동명의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연우무대의 작품은 이미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날 보러 와요'는 '살인의 추억'으로, '이'는 '왕의 남자'로 제작됐다. "짙은 해무는 어부들의 조각난 마음은 물론 바다와 하늘의 경계조차 허문다. 남은 것은 한없는 무기력과 끝을 알 수 없는 정체와 고립, 어디서 다가올지 모르는 위험에 대한 공포. 어둠이 아닌 빛 속에서 길을 잃는 것, 그것이 해무가 주는 공포다. 어둠 속에선 불을 밝히면 되지만 빛 속에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라는 연극의 내레이션처럼, 영화는 '해무'와 함께 몰려온 공포를 긴장감있게 재현했다.


봉준호 감독과 '살인의 추억' 시나리오를 완성시켰던 심성보 감독이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았다. 심 감독은 '해무'에 대해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또는 역시 인간이라면 저렇게 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감독의 말대로 비극적인 사건에 집중하기 보다는 사건을 대하는 인물들의 태도에 중점을 두는데, 그래서 더욱 숨 막히고 음습한 분위기가 유지된다. 이 과정에서 유일하게 인간성을 잃지 않은 인물 '동식'만이 조선족 처녀 홍매(한예리)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안개가 안겨다준 공포, 욕망 그리고 광기…영화 '해무' '해무' 중에서


참사가 있기 전, 배 위에서 선원들이 동고동락하며 지내는 장면은 실제 뱃사람들을 옮겨다놓은 것처럼 생생하다. 배우들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관찰한 디테일이 살아있다. 첫 영화 신고식을 치른 박유천의 연기도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광기어린 모습의 김윤석은 말할 것도 없다. '코리아'에서 북한 탁구선수를 실감나게 연기해 호평을 받은 한예리는 이 작품에서도 조선족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모습이다. 한정된 공간이지만 갑판 위와 기관실, 선장실 등을 오르내리는 카메라의 솜씨도 긴장감있다.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각 인물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캐릭터의 전형적인 틀 안에서만 행동하다보니, 극단의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면모를 보인다. 동식과 홍매의 로맨스도 보는 이에 따라 설득력이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철저한 심리 스릴러로서의 영화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마지막 후일담은 영화의 묵직한 주제를 해치는 사족처럼 느껴진다. 111분. 청소년 관람불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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