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시리즈 Story #12. 국회를 지키는 사람들
여의도 와서 "대통령 나와" 고함치는, 번지수 틀린 방문객은 누가 막을까
[아시아경제 김동선 기자, 주상돈 기자, 김민영 기자, 김보경 기자]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면 꼭 마주쳐야 하는 세 사람이 있다. 바로 국회 경비대원과 방호원, 경위다. 회의장을 관람하는 참관객이건, 취재하는 기자건, 회의에 참석하는 국회의원이건 예외 없이 이들을 순서대로 통과해야만 본회의장에 입장할 수 있다. 국회 안팎에서 이른바 '3선 경호 라인'을 구축하고 철통보안을 다짐하고 있는 국회 지킴이들을 만나봤다.
◆출입하는 사람들 "네가 왜 묻느냐" 짜증= 우선 국회 정문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의 경찰기관으로 국회 내 각종 위해요소에 대비함과 동시에 불법 집회시위 방지 등의 임무를 맡고 있는 국회경비대다. 대원 150여명과 경찰관 20여명 등 총 170여명이 근무하고 있는 국회경비대는 10여개의 국회 출입문을 포함해 울타리 요소요소의 경호를 책임진다. 이들의 주요 경계대상은 국회 울타리 안으로 기습적으로 들어가 시위를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이 같은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국회경비대의 타격대가 현장으로 출동한다.
경찰관 직무 집행법에 준해 근무하고 있지만 상황발생 시 체포 등의 공권력 집행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이들의 근무 수칙. 자칫 국회 전체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강민 국회경비대 경무계장은 "국회경비대가 체포를 하면 사람들은 경찰이 했다기보다 국회가 했다고 생각한다"며 "국회를 대변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특이상황 발생 시 국회경비대는 상황 확산을 막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후 관할서인 영등포경찰서에 인계한다.
규정에 따라 방문 목적을 묻지만 국회를 찾는 사람들에겐 달갑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의 첫 관문인 출입구를 담당하고 있는 국회경비대는 출입증을 패용하지 않은 채 울타리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에 한해 방문 목적을 확인한다. 국회 정문출입구에서 근무를 서는 송경연 상경(22)은 "아무리 정중하게 방문 목적을 물어도 짜증 섞인 답변을 들을 때가 많다"며 "때론 제 말을 아예 못 들은 척하거나 반말로 '네가 왜 묻느냐'고 따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국회경비대가 지키는 출구를 지나 건물에 들어서려면 신분증을 방문증으로 교환해야 한다. 방문증이 출입증인 셈이다. 이를 확인하는 등 건물 내부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은 방호원이다. 국회사무처 소속의 120여명 방호원들은 각 건물 출입구 40여개소에 배치돼 있다. 육안으로 출입증 패용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X선 탐지기로 물품을 검색하는 것이 이들의 주요 임무다. 출입자가 신분증에 있는 본인이 맞는지, 출입 유효기간이 지나지는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지난 4월1일부터는 좀 더 원활한 출입을 위해 각 출입구에 '스피드 게이트'를 설치했다. 출입이 허가된 사람들은 전자출입증을 특정 위치에 대면 자동으로 스피드 게이트가 열린다. 또 이들은 건물 내부 순찰을 통해 화재와 도난 예방 등의 경비 업무도 담당한다. 야간에도 당직자를 둬 24시간 건물 내부의 안전을 책임진다.
◆국회난투극 보고 "몸 괜찮으냐" 묻기도= 마지막으로 국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각 회의장의 안전은 국회 경위의 몫이다. 국회 경위는 1948년 구성된 제헌국회 때부터 국회법에 따라 회의장 경호를 책임지고 있다. '국회의 경호를 위하여 국회에 경위를 둔다'는 국회법(제13장144조1항)에 근거하고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통해 선발돼 국회사무처 경호기획관실 소속으로 근무한다.
이들은 본회의를 포함해 각종 위원회와 청문회, 국정조사, 국정감사 등이 열리는 회의장을 경호한다. 회의장 주변 위해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고 회의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국회 경위가 경호하는 대상은 회의장 전체로 사람보다는 공간을 경호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
따라서 회의장 안에서 발생하는 각종 돌발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처도 경위의 몫이다. 2001년 10월31일 한국통신 전 노조원이 국회 본회의장 4층 방청석에서 3층으로 뛰어내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현장에 근무하던 박모 경위는 "회의장 밖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큰소리가 들려 회의장 안으로 들어왔더니 이미 노조원 한 명이 약 4m 높이에서 뛰어내린 뒤였다"며 "발을 절뚝이며 국회의장에게 달려가던 중 3층에서 근무하던 경위들에게 제지를 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같은 돌발 상황 때문에 깐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은 칭찬보다는 비난에 익숙하다. 지난 2월 말 퇴임한 30년 경력의 김태연 전 의회경호담당관은 "우리가 근무를 열심히 하면 사람들은 이를 성가시게 생각한다"며 "국민들이 뽑은 300명의 의원들이 일하는 이곳에서 발생할지 모르는 불의의 사태를 막는 우리의 임무에 대해서도 국민들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15년차 강모 경위는 지인들로부터 "몸 괜찮으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각종 입법처리 과정 중 의원들 간에 발생한 격렬한 몸싸움을 말리는 강 경위를 여러 언론을 통해 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국회 경위를 근육질의 남성으로 떠올리기 쉽다.
◆여성 경위는 전체 60명 중 7명뿐= 국회 안에 몇 안 되는 여성 경위인 이모 경위는 이 같은 편견이 가장 불편하다고 한다. 그는 "경위를 몸 쓰는 직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경호의 의미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다"며 "제지하고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이 있을 때 먼저 해결하는 도우미 혹은 지킴이로 인식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경위는 60여명의 경위 중 7명 밖에 없는 여성 경위 중 한 명이다. 1994년 9급 공무원 공채를 통해 임용돼 21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 경위가 임용되기 전에는 여성들의 신체 검색을 하기 위해 여성 직원이 있었지만 남성 경위와 동등한 임무를 수행하는 여성으로는 이 경위가 처음인 셈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국회의 딱딱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여성 경위 채용을 제안했고 황낙주 의장 시절 총 5명의 여성 경위가 탄생했다.
국회를 방문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는 만큼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다. "대통령을 만나러 왔다"며 고함을 치는 방문객이 있는가 하면 특정 의원을 지칭하며 고래고래 욕설을 내뱉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해 4월엔 1년6개월 이상 근무를 한 베테랑 대원을 경악케 하는 경우도 있었다. 새벽에 한 여성이 국회로 들어섰다. 당시 정문에서 근무를 서던 이윤재 수경(23)이 방문 목적을 묻자 그 여성은 "내가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에 걸렸다. 치료를 위해 의원을 만나야겠다"며 막무가내로 출입을 시도했다. 이 수경은 "처음엔 술을 마셔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취한 것 같지도 않고 복장도 너무 평범해서 더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들은 국가 중요시설인 국회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남다르다. 지난해 10월 경비대로 전입을 온 박희훈 일경(23)은 "평범한 근무지가 아닌 국회에 근무하기 위해 신병교육대에서 지원했다"며 "국회의원 등 높은 사람들이 많아 더 긴장해야 하지만 이들을 포함해 국회를 지킨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말했다.
국회의장, 소란 피우는 의원 강제퇴장까지 가능
경찰투입 '경호권'과는 달라
국회경비대와 방호원, 경위 등 3선 경호라인은 모두 국회의 안전을 책임지지만 경위는 여기에 특별한 임무가 더해진다. 바로 회의장의 질서유지. 국회 경위는 국회의장의 지휘를 받아 회의의 원활한 진행을 책임진다. 더욱이 질서유지권이 발동되면 더욱 철저한 출입통제가 이뤄진다. 최근 국회에서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것은 여야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놓고 치열하게 맞서던 2011년 11월22일. 이날 오후 박희태 당시 국회의장은 질서유지권을 발동했다. 일반인의 방청이 불허되고 회의장에는 의원과 회의 진행을 위한 근무자, 국회 출입기자만 남았다.
국회 경위는 의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에 따라 회의장 내부의 외부인을 단속하고 회의장 출입문에 대한 검문검색을 강화했다. 당시 여러 언론은 이를 경호권 발동으로 보도했으나 공식적으로는 질서유지권만 발동됐다고 경호기획관실 관계자가 설명했다.
질서유지권은 일반적으로 청사 출입제한 조치와 함께 이뤄지기 때문에 질서유지권 발동 시점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 본관에 외부인에 대한 출입통제도 이뤄진다. 질서유지권은 의원이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 해당 의원에 대한 경고, 제지, 발언 취소를 넘어 강제 퇴장까지 할 수 있는 조치다. 이 질서유지권 발동 권한은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이 모두 갖는다.
반면 경호권은 국회의장만의 권한으로 의장은 경찰력을 동원해 회의장 밖의 경호를 지시할 수 있다. 가장 근래에 국회에서 경호권이 발동된 것은 1986년 10월16일. 검찰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성환 의원 체포동의요구서를 제출한 데 대해 신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가자 당시 이재형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했다.
국회 안 질서유지 체계는 외국도 마찬가지다. '국회 경호·방호업무 편람'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 주요국들도 일반적으로 국회 경위를 별도로 두고 회의장의 질서유지를 꾀하고 있다. 일반 경찰에 맡기지 않고 의회의 자율권에 기초해 의장에게 질서유지권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 경찰이 아닌 경위를 통한 내부경찰권을 행사한다는 점과 국회 안의 출입 금지 및 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가택권, 의장 직권으로 내릴 수 있는 징계권한 등이 질서유지권의 핵심이다.
주요국 의회는 공통적으로 회의장 질서를 중요시한다. 발언을 희망하는 의원은 반드시 의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의장은 발언 순서나 발언 시간을 제한할 수 있다. 심지어 의제를 벗어나거나 모욕적인 발언 등을 한 의원에게는 발언 중지나 취소를 지시할 수 있는 곳도 있다. 독일은 의장 직권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제재의 권한이 가장 강력하다.
독일 하원의 경우 의원의 질서 위반 행위에 대해 경고와 퇴장명령뿐만 아니라 출석정지까지도 의장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다. 영국 하원은 주의, 발언중지, 퇴장명령, 호명제재를 의장 직권으로 내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의장이 해당의원에게 주의는 줄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이의제기가 본회의에서 가결되면 해당의원이 발언을 계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발언 제재와 관련한 의장의 권한이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의원의 질서문란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징계는 윤리특별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서 의결돼야 한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징계요구안이 윤리특위에 제출되는 경우도 드물고 제출된다고 해도 처리가 된 경우는 없었다. 실제로 19대 들어 질서문란 관련 징계안을 포함해 총 31건의 징계안이 접수됐지만 철회된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소위에 계류된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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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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