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충무로에서]교육의 '설국열차'

시계아이콘01분 42초 소요

[충무로에서]교육의 '설국열차'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AD

6ㆍ4 지방선거에서 사람들을 가장 깜짝 놀라게 한 현상은 아마도 교육감선거 결과일 것이다. 전국 17개 시ㆍ도 가운데 서울ㆍ부산을 비롯한 13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들이 싹쓸이 당선된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말이 쏟아진다. 세월호 사고로 '앵그리 맘(angry mom)'들이 분노를 표출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진보는 단일화했는데 보수 성향은 여러 사람이 출마하는 바람에 공멸했다고 보는 정치적 셈법도 있다.


다른 한편에선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당선됐으니 전교조가 득세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교과서가 판을 칠 것이며, 따라서 대한민국 교육의 근간은 무너졌다고 개탄하는 극단적인 목소리까지 들린다.

나름대로 논리와 이유가 있겠지만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외면한 분석이라는 생각이다. 견지망월(見指忘月),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더니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보더라는 얘기가 생각나는 이유다. 진보 교육감에게 쏠린 표가 내 귀에는 앵그리 맘의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대학민국에서 아이를 제발 정상적으로 키우게 해 달라는 '슬픈 비명'으로 들린다. 진보나 보수 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선택이 아니라 아이를 아이답게 키울 수 있게 해 달라는 간절한 엄마들의 기대가 대안적 교육실험에 대한 기대로 쏠린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는 모든 엄마들은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공포심부터 느낀다고 한다. 유치원부터 영어유치원을 보내거나 영어과외를 시켜야 하고,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선행학습을 위한 학원을 다녀야 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선행 학습한 아이들은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입시전쟁을 향한 빠른 컨베이어 벨트에 서게 된다. 잠깐이라도 머뭇거리거나 한눈을 팔면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져 내려야 하고, 결국 전체 과정을 충실하게 추종하는 아이들과 중도 탈락한 아이들 간에 넘어설 수 없는 간극과 갈등이 존재하게 된다.

힘들기는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대느라 허리가 휠 수밖에 없고, 사교육비를 댈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에 차이가 벌어진다. 무리해서 사교육비를 대는 부모들도 자신들의 평균적인 삶과 노후를 포기해야 하는 뼈아픈 경제적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한반복의 교육 시스템에 끌려들어가 10년 이상 되는 긴 시간을 버텨낼 자신이 없는 엄마들은 사교육비 때문에 온 집안이 희생하지 않아도 사회에 잘 적응하는 건강한 아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는 혁신교육이나 대안교육에 기대를 걸고 진보 성향 교육감 후보들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당선된 진보 성향 교육감들에게 바란다. 교육은 보수든 진보든 이데올로기의 시험대가 아니며, 부모들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를 실현시키기 위해 진보 교육감을 선택한 것도 아닐 것이다. 부모들의 소원은 대강 이런 내용일 것이다.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아도 아이들을 아이답게 잘 키울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 청소년들이 먼지 가득한 어두운 교실에서 음지식물로 자라나지 않고 밝은 태양 아래서 땀 흘리고 달릴 수 있도록 체육시간과 체육시설을 지금보다 더 늘려 달라. 아이들 사교육비를 대느라 청춘과 노후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부모들의 삶을 되돌려 달라."


배우 송강호가 주연을 맡아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설국열차'에는 어린이가 주요 모티브로 등장한다. 기차의 어느 한 칸에서는 아이들이 아무런 회의도 없이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고 가끔씩 실종되는 어린이들은 나중에 찾고 보니 기차가 무한궤도를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부품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번에 당선된 교육감들은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이 무한궤도를 반복하는 설국열차가 되지 않게 해야 할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