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원작...1930년대 대공황 배경의 실화가 바탕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67년에 제작된 할리우드 고전이다. 대공황 말기를 배경으로, 당시 대중의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2인조 은행 강 도 보니와 클라이드의 실화를 다뤄 흥행과 비평, 두 가지 면에서 성공을 거뒀다. 철없지만 매력적인 20대 초중반의 두 주인공들의 강도 행각이 대담해질수록, 대중들의 환호도 열렬해졌다. 대량 실업과 물가상승 등으로 생활이 피폐해진 사람들에게 이들은 체제에 저항하는 '삐뚤어진' 슈퍼스타였다.
특히 실제로 1930년대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보니와 클라이드가 언론과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데는 개인의 매력도 한 몫했다. 텍사스 출신의 보니는 클라이드를 만나기 전까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지만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권태를 느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클라이드는 무장 강도로 교도소에서 2년을 살았고, 1931년 모범수로 석방된다. 결과적으로 클라이드의 범죄 행위에 보니가 가담한 모양새로 보이지만, 성격은 보니가 더 적극적이고 도발적이다. 영화에서 처음으로 은행을 털러간 장면에서도 클라이드는 어딘지 불안해 보이는 반면, 보니는 여유만만한 모습이다.
영화가 보니와 클라이드가 활약했던 당시의 시대상과 이들의 범죄행위, 경찰과의 추격전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뮤지컬은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더 부각시킨다. 차에 올라탄 보니와 클라이드가 무차별 총격을 맞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 이 작품은 이들의 사랑이 끝내 비극으로 치달을 것임을 미리 관객들에게 암시하며 긴장감을 조인다. 아역을 통해 보니와 클라이드의 어린 시절을 보여줌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고 시도했다. 또 영화에서 성적 불구로 등장했던 클라이드는 뮤지컬에서는 남자다움을 과시하고, 보니는 클라이드에 대한 순정을 가진 여성으로 캐릭터로 조정됐다.
이들이 돈을 훔치기 위해 들어간 은행이 알고 보니 파산해 돈 한 푼 없는 상황이었다는 설정은 당시 사회상을 코믹하게 반영한다. 실제 보니와 클라이드의 흑백 사진을 간간히 비추는 영상은 이 범죄극이 실화라는 점을 관객들에게 실시간으로 강조한다. 지난 해 초연 공연에 비해 극의 흐름도 매끄러워졌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던 부분을 없애 15분 가량이 단축됐고, 각 캐릭터의 입장을 대변하는 넘버도 2곡 추가됐다. 배우들의 연기도 만족스럽다. 엄기준은 넉살좋고, 능수능란한 클라이드 역을 선보이고, 뮤지컬 배우로 첫 도전한 가희는 당차고 도도한 보니의 이미지와 어울린다. 솔로 파트에서도 보니의 넘버들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하지만 여전히 관객들이 이 주인공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난감한 문제로 남는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매력에 빠져들 수는 있지만, 이들의 범죄행위를 응원할 정도는 아니다. 파국으로 치닫는 이들의 사랑과 범죄는 관객들에게는 '위태로운 구경거리'로 작용할 뿐, 그 심리적 거리감 때문에 오히려 최후의 비극이 왔을 때 감정의 동요가 적다. 경찰이 턱끝 아래까지 추적해왔을 때, 이들이 겪을 불안함과 두려움, 저항과 투항 사이에서의 갈등에 대해 보다 세밀하게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화려한 쇼 뮤지컬로서의 재미는 확실히 있다.
6월29일까지 서울 BBC아트센터에서 공연하며, '클라이드' 역은 엄기준과 에녹, 키, 박형식이 맡고 있으며, '보니' 역은 가희와 오소연이 캐스팅됐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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