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덕 해외건설협회장
한·중·일 '해외건설삼국지' 시대…중국은 '돈'·일본은 '기술' 막강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 설립…우수인력·기술 확보 등 정책지원이 중요
[아시아경제 이민찬 기자]"정부의 해외건설지원 시스템이 연 100억달러 수주하던 시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지금은 600억달러 이상을 수주하는 시대인데 말이죠."
최재덕 해외건설협회 회장(만 66세)이 강조하는 바는 이렇게 요약된다. 해외건설은 고용을 늘리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물론 국가의 브랜드를 격상시키는 국가의 효자산업이다. 그러니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좀더 적극적인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로 49년이 된 우리의 해외건설 역사는 짧지만 많은 성과를 거뒀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 하나로 해외시장에 진출했다. 작년까지 누적 해외수주액 6000억달러를 달성했다. 연간 해외수주 목표가 700억달러에 이를 만큼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기술은 날로 진화해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공종과 지역 다변화, 고부가가치 시장 진출 등 넘어야 할 산이 산적해서다. 그래서 700억달러 수주를 뛰어넘어 1000억달러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적절하게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회장은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건설협회에 해외건설 분야만을 연구하는 싱크탱크인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를 지난 2월 설립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기대가 크다. 센터를 출범시키고 정부와 건설업계의 가교 역할에 나선 최 회장은 강한 의지를 담은 듯 또렷한 눈망울로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한·중·일 '해외건설 삼국지' 시대에 돌입해 있습니다. 세계무대에서 우리와 경쟁하는 일본은 기술력이 뛰어나고 중국은 자본이 풍부합니다.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어요. 시대에 맞는 정부의 지원 정책이 간절한 시기입니다."
최 회장은 현재 가장 시급한 정책으로 해외건설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을 꼽았다. 또 수주확대에 따라 급격히 늘어나는 건설현장 관리인력 부족에 대비해 건설인력을 수요에 맞게 양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해외건설은 단순 기업간 경쟁 성격을 벗어나 고급정보 제공, 우수인력 양성, 대규모 금융지원, 원천기술 확보, 고위급 건설외교 등이 총 망라된 국가 대항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기업차원에서는 해결이 어려운 것들인 만큼 정부가 앞장서서 해결해줘야 합니다."
그는 '해외건설정책지원센터'가 앞으로 이 같은 고민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협회는 연초 센터의 출범과 함께 대대적인 인사와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정책개발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박사급 인력을 충원하고 기존 정책연구실을 정책기획처와 금융지원처로 분리, 확대·개편했다. 우리 해외건설의 가장 큰 화두인 정책 개발과 금융지원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국내 건설 분야는 국토연구원,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등을 통해 양질의 정책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건설 분야는 급증하는 수요를 뒷받침 할 정책 싱크탱크가 전무했어요. 이런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정부차원의 해외건설 위험 관리와 정책수립 지원을 위해 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국회와 정부, 협회의 공동작품입니다. 앞으로 센터는 해외건설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통해 시사점을 도출하고 방향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협회는 업계와 정부의 다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최 회장은 국내 건설사들은 건설 산업의 3대 경쟁 요소라 할 수 있는 품질, 가격, 공기 측면에서 경쟁국들에 비해 뛰어나 발주처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선진국에 비해 아직 부족한 정보, 인력, 금융, 원천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업체들은 설계와 시공, 기자재 등을 일괄적으로 수출하는 플랜트 EPC(Engineering, Procurement, Construction)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 짧은 기간에 철도와 공항, 다리 등 다양한 사회간접자본들을 건설하며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100여년 전에 지하철을 놓은 선진국과는 다른 점을 개발도상국이 배울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협회는 정부와 함께 중소건설사의 해외진출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시장개척지원사업'을 통해 2003년부터 317개사 674개 프로젝트에 총 225억원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67건 45억달러의 사업이 수주로 연결됐다. '중소기업수주지원센터'에선 해외건설 교육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으며 전문가 70명으로 구성된 POOL을 통해 매년 2000여건의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연초부터 수주가 순항하고 있어 올해 해외수주는 목표했던 700억달러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발주가 지연돼 왔던 중동의 대형 플랜트공사 추진이 작년 말부터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 업체간 또는 외국업체와의 컨소시엄으로 수주에 성공하는 등 업체들의 진출전략 변화로 대형공사 수주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최 회장의 말에서 희망이 묻어났다.
이민찬 기자 lee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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