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근 토지주택연구원장, "기존 임대주택서 '진삼보'한 것"
-장기공공임대주택비율 5%대
-LH가 시행할 주택바우처 서둘러 정착토록 사전조사 강화키로
-도시개발은 철거·보존 함께해야
[대담= 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무상 복지는 없다.' 이인근 토지주택연구원장의 이 한 마디는 '보편적' 주거복지 시대를 맞이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현 주소를 말해준다. 최소한의 주거 안전망을 확보하기 위한 LH의 역할과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주거 인프라 수준은 소득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는데, 그 격차를 메울수록 LH의 경영 부담은 덩달아 무거워진다는 얘기다. 부채감축을 중심으로 한 공기업 개혁이 추진되고 있어 더욱 부각되는 주제다. 그럼에도 LH와 주거복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기 성남시 분당의 LH 본사에서 만난 이인근 원장이 주거복지를 강조한 것은 LH의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토지·주택 공급에서 주거복지로 이동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는 것이다.
◆공급 역할 줄고 주거복지 기능 커져= 토지주택연구원은 새로운 주거 제도가 도입되기 전 미리 제도를 정비하고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토지·주택 제도의 큰 축을 담당하는 LH의 속살도 면밀히 들여다볼 기회가 많다. 이 원장은 LH가 전환기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신규 택지를 조성해 주택을 공급하던 역할에서 한 발 나아가 입주자를 위한 다양한 주거복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 원장은 "임대주택 공급, 관리와 더불어 입주자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여러 가지 주거복지사업 등 주거복지는 LH의 필수적인 역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LH의 주거복지사업 현안으로는 '행복주택'과 '주거급여(바우처)' 시행을 꼽았다. 행복주택은 철도 부지 등을 활용해 제공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저소득층 뿐만 아니라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대학생 등 사회적 활동이 활발한 계층에게 일부 우선 공급된다. 이 원장은 "젊은이가 없는 동네, 유모차가 없는 동네는 참으로 쓸쓸하다"며 "일터와 집이 가까운 직주근접 환경에 젊은이의 주거 개념을 도입한 행복주택은 종전의 임대주택에 비해 '진일보'가 아니라 '진삼보'한 바람직한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일부 사업지구는 주민 반대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사업 시행 초기 갈등 해결이 과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주거급여의 경우 올해부터 LH가 전담기관이 됐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공공부조 성격으로 시행하던 것을 국토교통부가 이어받았다. 오는 7~9월 시범사업을 거쳐 10월부터 시행된다. 기대 반 걱정 반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이 원장은 "기초수급자가 대상이고 기존 73만가구에서 97만가구로 범위가 약간 넓어지는 거라 큰 변화를 없을 것"이라면서도 "임대료 상승, 시장 부작용 등 인근 전월세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관심을 두고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주거복지로 흐름이 바뀌고 있어도 기본 역할인 임대주택 공급·관리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었지만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365가구에 불과하다. 특히 소득계층별 불균형이 심각한 터라 저소득층에게 주택 문제는 더 크게 와 닿는다. 우리나라의 장기공공임대주택 비율도 20011년 기준 5%대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 11.5%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 원장은 "임대주택 재고량을 높이려면 연간 10만가구를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면서 "임대주택을 건설한 택지가 부족한 상황인 만큼, 당분간 건설임대공급과 함께 매입임대주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복지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움직일수록 LH의 부담이 커진다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이 원장은 "임대주택을 건설하면 가구 당 1억원 정도의 부채가 늘어나고 운용 부채도 계속해서 쌓인다"면서 "무상복지란 없듯이 입주자들이 받는 혜택만큼 LH가 부담하고 있는데 이를 현실화하는 동시에 주거급여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도시재생으로 활력 불어넣어야= 이 원장은 도시 정책 역시 같은 맥락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도시 재생이 핵심이다. 낙후된 도심부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임대주택을 공급, 일자리 창출 등과 연계해야 비로소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 유형은 지역 여건에 따라 적정한 방식을 접목할 수 있도록 철거형과 보존형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 원장은 "우리나라의 주거 인프라는 소득 수준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며 "주거 여건이 안 좋은 곳은 새로운 인프라를 갖추게 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수익만 생각하지 말고 이 동네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큰 그림을 그리고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느 한 방식이 옳은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선택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또 공공이 주도하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도시재생의 하나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아낌없는 조언도 했다. 지금까지의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민간자본을 투입하는 특성상 수익성이 높은 서울,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만 이뤄졌다. 1989년 이후 공공부문에서 사업성이 부족하고 취약계층이 밀집한 쇠퇴지역에서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해왔지만, 이마저 영세거주민 재정착 한계 등의 부작용을 일으켰다. 이에 물리적인 환경 개선 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재건 프로그램을 병행해 사회적 재생이 가능해야 한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이 원장은 "민간이 주도하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면서 "개발 이익이 아니라 실질적인 삶의 질을 개선하려면 주민들의 수요와 능력에 맞는 소규모 정비방식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민들이 민간-공공 공동추진 방식을 희망할 경우 LH 등이 참여하는 소규모 정비모델 개발과 시범사업 추진이 뒷받침돼야할 것"이라고 했다.
#이인근 토지주택연구원장은?
이인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 토지주택연구원장은 토목 분야 전문가로 서울시에서 토목·건설 분야의 관료로 일해 온 정통 관료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영국 런던 시티대(City University)에서 토목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8년 제14회 기술고등고시(토목직) 합격 후 토목사무관으로 서울시에서 근무를 시작해 서울시 건설기획국장, 도시계획국장, 도시안전본부장을 역임했다.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홍조근정훈장(2006년), 근정포장(1993년) 등을 수상했다. 영국토목학회로부터 'Reed and Mallil Medal'(2007년)을 수여받기도 했다.
▲1979년 2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공학사)
▲1984년 8월 서울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공학석사)
▲1991년 10월 영국 런던City University 박사과정 수료 (토목공학박사)
▲1978년 12월 제14회 기술고등고시(토목직)합격
▲2009년 1월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 도시안전본부장
▲2012년 2월 서울시립대학교 토목공학과 초빙교수
▲2013년 8월 한국토지주택공사 토지주택연구원장
정리= 박혜정 기자 parky@asiae.co.kr
사진= 최우창 기자 smic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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