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 난다
문경아리랑이 아닌 진도아리랑의 첫 구절이다. 천리는 떨어져 있을 진도와 문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왜 갑자기 저 섬마을에 문경새재를 묻는 질문이 노래가 되었을까.
우선 문경새재는 서울로 가는 조선팔도의 중심대로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선비들이 비교적 산적의 위험없이 안전하게 이동하는 관문이었다. 섬마을의 어느 선비가 그곳 처녀와 사랑을 나눈 뒤 한창 뜨거운 차에 과거시험을 보러 떠난다 하니, 그녀가 기가 막혀 물었다. 대체 한양이 어디에 있단 말이오? 저 문경새재를 넘고넘어야 나오는 곳이여. 사내를 보내놓고 여인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 섞인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저 먼 곳,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굽이야 굽이굽이가 눈물이로구나'라고 흐느낀다.
과거시험이 아니더라도 어느 벼슬아치가 지방에 내려왔다가 그곳 기생과 사랑을 나눈 뒤 떠난 뒤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기생이라 지역에 묶인 몸이니 따라갈 수도 없고, 다만 저 문경고개를 넘어 나으리의 행차가 서울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북녘 하늘을 목이 아프도록 쳐다보며 여인은 부르짖었다. 문경새재는 웬 고갠고?
혹자는 이렇게도 해석한다. 아리랑이 지역적으로 정리될 무렵(1920년대 무렵)에, 문경아리랑은 워낙 전국적인 유행을 타고 있어서 그것이 자연스럽게 진도까지 흘러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남아있는 문경새재 아리랑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문경새재 넘어 갈제
구비야 구비야
눈물이 난다
그런데 진도의 향토사가 박병훈은 다르게 생각했다. 어찌 진도에서 천리 먼곳 문경새재를 노래했겠는가. 이것은 누군가가 가사를 채록하는 과정에서 잘못 들은 것임에 분명하다. 진도에는 마침 문전세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잘못 옮긴 것일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문전세재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진도에 시집살이 온 여인의 힘겨운 일생이 그 말 속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문(門)은 바로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있는 문을 가리키는 것이고, '문전'이란 '죽기 전의 일생'을 의미한다. 죽기 전에 넘어야할 세 고개라는 것이다. 문전첫재는 안방에서 부엌으로 가는 고개이고, 문전두재는 부엌에서 마당으로 가는 고개, 문전새재는 바로 마당에서 바깥으로 나가는 고개라고 한다. 시집와서 부엌살림과 노동을 실컷 하다 죽음에 이르는 숨찬 일생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라 한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자 문전세재에 대한 다른 주장들도 쏟아졌다.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옛 가인들의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모두 '문전세재'였다는 증언이 나오고, 문전세재는 진도 임회면 광전마을에 실제로 있는 고개 이름이라는 주장(광주시 안기석 대변인/경향신문)도 등장했고, 진도성문 앞에 있는 문전세전을 잘못 발음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문전세전은 남산재, 연등재, 굴재를 말한다고 한다.
진도에서는 진도아리랑 속의 문경세재가 '지역 침탈'이라고 주장하기도 하며, '문전세재'로 바꿔야 한다고 당국에 건의를 했으나, 정부에선 아직 증거가 미약하다고 보고 판단을 미루고 있는 상태이다. 마침 진도 앞바다에서 참극이 일어나 뒤숭숭하기 이를데 없는 판국인지라, 문득 진도아리랑의 문전세재가 떠오르며 삶과 죽음의 한겹 문에 붙어 싸운 아이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그 노래가 피를 토하는 것 같다.
이상국 편집에디터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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