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후 재정부족, 근거없다 등 이유로 번번이 막아
2010년 해양수산硏 "내항선 해양사고예방전담기관 설립해야"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정부가 해양사고 발생 때마다 제기됐던 '사고예방전담기관 설립' 건의를 여러 차례 묵살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선박 종류에 따라 담당 기관과 형식이 달랐던 내항선(국내 항을 오가는 선박) 안전관리가 통합 전담기관을 통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면 세월호 침몰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한국해양수산연수원이 2010년 10월 국토해양부(현 해양수산부+국토교통부)에 제출한 '대형 해양사고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체제 운영개선' 용역보고서는 '내항선 해양사고예방전담기관' 설립을 주장했다.
보고서는 "우리나라 내항선 안전관리현장 조직이 선박의 종류별로 각기 다른 단체, 기관에 각각 다른 현장조직체계로 운영되고 있어 안전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객선의 경우 해운법에 근거해 해양경찰청과 한국해운조합이 안전관리를 담당하고, 어선은 선박안전조업규칙에 따라 자치단체, 시장군수구청, 수협중앙회가 맡고 있다. 화물선은 해상교통안전법, 유도선은 유선및도선사업법에 따른다.
당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 사고로 해양사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보고서는 "국내 항을 오가는 선박들의 해양사고가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연안여객선 운항관리제도를 확대하고 '내항선안전관리센터(가칭)'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부 조직도와 소요예산, 재원확보 등 구체적 방안도 함께 담겼다. 설립형태는 재단법인으로 해상교통안전법에서 법인의 지원근거를 마련하고, 소요재원은 초기예산 12억7800만원을 포함해 98억원 상당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제시된 조직도를 살펴보면 120명 규모의 '안전관리센터'는 안전관련 정책을 개발하고, 현장 안전점검 및 교육을 담당하는 '안전본부'와 인천, 목포, 여수, 부산, 제주 등 주요 출입항 지역에서 운항현황과 안전관리상황을 실시간 확인해 사고 발생시 즉각 대응하는 '광역 운항관리실'로 구성된다.
특히 보고서는 새로 만들어질 전담기관이 전문성과 독자성을 갖춘 독립적 조직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듬해 독립기관인 '해양안전교통공단'을 신설하는 내용의 해사안전법 일부 개정안은 국토해양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양사고예방전담기관 설립이 정부에 의해 막힌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1986년에는 당정협의와 국무회의 심사까지 통과했으나 대통령의 반대에 부딪혔고, 1990년에는 해난방지공단 설립안이 마련됐으나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막혔다.
1999년 어선해양사고방지종합대책이 수립될 당시에는 관련 센터가 설립됐으나 협회 성격으로 현 선박안전기술공단에 소속됐다. 2002년 들어 다시 독립법인으로 운영하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이번엔 재정부족 이유로 막혔다. 2007년에도 해양안전관리법 제정과 함께 안전연구기관의 설립이 추진됐다가 또 보류됐다.
일본의 경우 1958년부터 해난방지협회가 설립돼 운영되고 있으며 2010년 협회 예산은 7억3000만엔에 달했다. 미국은 해양안전을 담당하는 연안경비대(USCG)는 물론 USCG와 예부선산업을 대표하는 AWO와의 협력체도 20년 전부터 운영되고 있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3면이 바다임에도 해양안전에 대한 인식이 낮다는 걸 증명하는 사례"라며 "내항선 안전관리 현장집행체계에 문제가 있고 통합관리가 필요하다는 건 수차례 나온 얘기지만 매번 예산 등의 이유로 묵살됐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로 부실검사 논란에 휩싸인 한국해운조합, 한국선급 외에 각 협회에도 관련 부서가 있었지만 형식적으로 운영됐다.
한국선주협회 해양안전연구실은 파견 직원 2명 형태로 운영되다 1998년부터 업무가 중단됐고, 2000년에 설치된 선박검사기술협회(현 선박안전기술공단)내 사고방지센터는 3~4명이 검사업무를 겸직해와 사고 방지활동에는 한계가 있었다. 서해훼리호 사고보상 잔여금을 출연해 2001년12월 설립한 여객선안전재단은 선원교육, 자녀장학사업, 안전문화 홍보 등의 역할만 담당하고 있다.
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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