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6.4 지방선거가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한동안 고전하던 박원순 시장이 모처럼 '타요버스' 열풍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원이라는 호재를 만났다. 박 시장이 이에 힘입어 재선의 고지에 안착할 있을 지 주목된다. 전문가들은 여당 후보들이 내놓고 있는 개발 공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시민들의 민심을 아우를 수 있는 최대 승부처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각종 여론 조사 결과 여당 예상 후보들을 10% 이상 큰 차이로 누르며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올해들어서도 2월까지만 해도 재선 가도엔 파란 불이 켜져 있었다. 이명박ㆍ오세훈 시절 대형 토목ㆍ개발 사업에 염증을 느낀 시민들이 박원순식 '힐링 시정'에 높은 지지를 보였기 때문이다. 치적쌓기 식으로 비춰지는 대형 사업을 벌이지 않는 대신 서민들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박 시장의 진심에 시민들이 호응해줬다.
또 3조원대로 늘어난 서울시의 부채를 줄여나가는 한편 페이스북ㆍ트위터ㆍ카카오톡 등 이른바 '카페트'로 불리는 SNS를 적극 활용해 발빠르게 시민들과 소통하고 민원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지지율을 높였다.
하지만 3월부터 새누리당의 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박 시장의 지지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새누리당내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던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데 이어 '친박'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출마하는 등 경선 열기가 뜨거워지자 여론조사상 지지율이 안정적 우세에서 박빙 우세로 전환되는 등 위기에 내몰린 상태다. 4월 들어서는 야권 내에서도 "서울마저 위태롭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객관적인 여건도 박 시장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태다. 2012년 선거에선 한창 인기 절정이었던 '안철수 효과'가 박 시장을 뒷받쳐줬다. 현역 이명박 대통령과 여당의 낮은 지지율, 오세훈 시장의 결정적 실책(무상급식 찬반 투표) 등도 박 시장으로선 호재였다. 반면 현재는 60%대를 육박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 40%대로 야당을 압도하는 새누리당, 20%대로 바닥을 기는 야당의 지지도, '안철수 효과'의 실종, 무상급식과 같은 뚜렷한 선거 쟁점의 실종 등 불리한 것 투성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전하던 박 시장에게 최근 '천군만마'가 나타났다. 타요버스 열풍이 바로 그것이다. 안그래도 '올빼미버스'(심야버스)로 시민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었던 박 시장은 '버스'로만 2연타석 안타를 친 셈이다. 타요버스는 박 시장 특유의 경청, 소통이 빚어낸 작품으로, 거창하지만 시민들의 삶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던 기존 시정과 달리 사소하지만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힐링 시정'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박 시장은 특히 타요버스 열풍을 발판 삼아 아예 박근혜 정부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지고 있던 '창조경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나선 상태다. 지난 10일 창조경제의 핵심 요체인 창조와 혁신을 통해 '융복합 경제'를 완성하며, 이를 위한 최우선 과제로 '글로벌 경제'와 '공존 경제'를 동시에 실현하겠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서울형 창조경제모델'을 발표한 것이다.
박 시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콜럼버스의 달걀을 보라. '누가 못해'라고 하지만 콜럼버스 이전엔 달걀을 세울 수 없었다"며 "창조와 혁신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주변에 있고 서울시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타요버스 아이디어는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시민과 버스회사 사장이 제안해 제가 그걸 즉각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게 경청과 소통의 힘이다. 창조경제란 건 융복합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가 '전매특허'처럼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론 개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창조경제'의 저작권에 박 시장의 도장이 찍히는 순간이었다.
이어 박 시장은 12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았다. 시기적으로 이시기는 경선 효과로 상대방 후보들의 지지율이 오르는 반면 박 시장은 일찌감치 단독 후보로 확정되면서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던 상황에서 사실상 본격적인 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과 문 의원의 만남은 남의 표를 뺏어오기 전에 먼저 '집토끼 단속'에 나선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원은 기대대로 "정몽준, 김황식 후보는 활발하게 언론의 조명을 받는데 우리 박 시장님은 상대적으로 그렇게 안 돼고 가려지는 면이 있다. 제가 그런 상황이 안타까워서 도움이 좀 될까해서 왔다"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타요버스'와 '문재인의 지지'라는 천군만마를 얻은 박 시장에게 재선 고지를 넘기 위해 남은 과제는 뭘까? 전문가들은 여당의 개발 공약 공세에 대한 적절한 대처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여당의 유력한 후보인 정몽준 의원 측은 최근 노골적으로 "정몽준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어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난다"는 말을 퍼뜨리고 있다. 심지어 무리한 개발 사업이 빚은 실패의 '본보기'로 여겨져 온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을 재추진하겠다고 나서는가 하면 박 시장이 도시형 텃밭으로 가꾸고 있는 노들섬(위)에 대관람차를 건설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정 후보는 또 동부간선도로 일부 지하화, 뚝섬ㆍ광나루ㆍ여의도ㆍ반포에 백사장 조성, 은평-강북-도봉 북한산벨트 관광특구 조성 등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박 시장에 대해 "한 일이 없는 시장"이라는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일하는 정몽준' vs '한 일 없는 박원순' 구도를 선거 전략으로 세웠다는 얘기다. 경쟁자인 김황식 전 총리도 시청~강남간 10분대 급행열차 사업 추진, 재건축 연한 40년에서 30년으로 단축 등의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이같은 여당 후보들의 전략에 박 시장은 강-온 양면 전략을 병행하며 맞서고 있다. 박 시장은 한편에선 "치적쌓기 식 대규모 개발 사업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기존의 소신을 강조하면서 여당 후보들의 개발 공약을 "잘 몰라서 벌이는 일"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다른 편에선 "필요한 개발은 한다"며 개발을 원하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서고 있다. 최근 발표한 코엑스 일대 개발 계획이 대표적 사례다. 무조건적인 개발 반대가 아니라 난개발 전시 행정이 아니라면 필요한 곳은 개발해 시민 편의를 높이고 도시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박 시장이 이같은 선거 전략으로 '개발 공약'이라는 파고를 넘어 재선의 고지에 안착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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