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이른바 '황제노역'은 법조계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다. 법조계 부적절한 유착을 걸러내야 할 사법부의 그물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차별을 정당화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 노역을 허용한 판결의 큰 문제는 그 결정에 법적 하자가 없었다는 데 있다. 노역으로 벌금을 대신하는 현행 '환형유치제도'는 그만큼 허점이 많다. 노역 일당은 법관 재량이고 상한선도 없다.
'황제노역'이라는 '절묘한' 작명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당 5억 노역 판결은 국민감정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여론이 부글부글 끓었다. 사법부는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대처했다.
대법원은 전국수석부장판사 회의를 열고 '환형유치' 제도 개선안을 마련했다. 판결 주체인 장병우 광주지방법원장은 사직서를 제출했다.
지역 법원에서 오래 일하게 하는 향판(鄕判·지역법관) 제도도 여론 도마 위에 올랐다. 허 전 회장과 장 법원장 관계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기도 했다. 검찰이 허 전 회장 은닉재산을 찾는다는 후속보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든다. 허 전 회장과 장 법원장 등 특정인들의 관계가 이번 사태의 본질일까. 그렇다면 이는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탓하는 격이다.
법원에 앞서 검찰이 선고유예를 요청하는'봐주기' 구형을 했고, 법원은 '일당 5억원'이라는 상식에 벗어난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허 전 회장은 광주지방법원장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전관예우' 관행을 노렸다.
이렇게 법조계는 합법으로 포장된 유착을 통해 부끄러운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 사건은 특정인의 이례적인 특혜가 아니라 법에 담겨 있는 불공정을 마음껏 활용한 법조계 관행이 빚은 결과이다. 특정인에게 비판의 화살을 쏠리게 하는 것은 본질을 가리는 책임회피일 수 있다.
사실 황제노역은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법부는 법원을 포함하는 법조계 불공정 유착 메커니즘의 본질에 천착해 근본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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