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은 지난 정규리그에서 4위를 했다. 포스트시즌은 달랐다. 준 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 넥센과 LG를 각각 물리치고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서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뒷심 부족으로 준우승했다. 전력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마운드다. 팀 평균자책점이 4.34(477실점)로 6위에 머물렀다. 피안타(1311개)와 볼넷(584개)은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많은 956개의 탈삼진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선발진에서는 세 투수가 제몫을 했다. 유희관은 145.1이닝을 동안 평균자책점 3.53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ERA)을 기반으로 하는 베이스볼레퍼런스 방식의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bWAR)에서는 3.35였다. 노경은은 팀 내 가장 많은 180.1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3.84 bWAR 2.73을 남겼다. 더스틴 니퍼트는 등 부상으로 고전했다. 111.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3.58을 기록했다. 규정이닝(128)을 채우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bWAR 2.38을 기록했다. 투수 전체 18위다. 불펜에서는 정재훈이 52.1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3.44 피OPS 0.554로 부활했다. 홍상삼은 구원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72이닝을 책임지며 평균자책점 2.50 피OPS 0.615를 남겼다. 두 선수를 제외하고 승리조의 수식어가 붙을 만한 투수는 없었다. 사실 두산에게 가장 뼈아팠던 건 두 번째 외국인선수다. 개릿 올슨은 38.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6.52로 부진, 시즌 중반 짐을 쌌다. 대체선수로 합류한 데릭 핸킨스도 60.2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6.23 bWAR -0.26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심혈을 기울인 듯하다. 높은 타점과 수준급 변종속구(투심·싱커·커터)의 투수를 데려왔다. 크리스 볼스테드다.
특급 유망주에서 쿼트러플A 선수로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200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전체 16번으로 플로리다 말린스에 지명됐다. 203cm의 큰 키, 농구와 야구를 통해 드러난 운동능력, 영리한 플레이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불같은 승부욕은 덤. 볼스테드는 플로리다 입단 뒤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야구전문지 ‘베이스볼아메리카(BA)'로부터 3년 연속(2005년~2007년) TOP 100 유망주에 선정됐다.
볼스테드는 2008년 빅리그에 데뷔,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84.1이닝을 던지며 6승 4패 평균자책점 2.88를 기록했다. 그러나 루키 시절의 센세이션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3년(2009년~2011년) 동안 이닝이터(499.2)의 면모를 보였지만 평균자책점이 4.88이나 됐다. 플로리다는 결국 카를로스 잠브라노를 영입하면서 볼스테드를 시카고 컵스로 보냈다.
볼스테드는 2012년부터 빅리그와 마이너리그 트리플A를 오고가는 전형적인 쿼트러플A 선수로 전락했다. 반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특급 유망주가 평범한 투수로 전락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 구속 감소와 부상이다. 볼스테드는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루키였던 2008년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은 145.7㎞. 지난해 구속은 147.3㎞로 오히려 소폭 빨라졌다. 부상과도 거리가 먼 투수였다. 빅리그 데뷔 이후 부상자명단(DL)에 오른 기간은 15일에 불과했다.
시즌 중반이 고비
데뷔 초와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팔 높이다. 볼스테드는 데뷔 초 오버핸드스로우에 가까운 폼으로 큰 키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 덕에 속구의 상하 움직임(Vertical Movement)이 빼어났고, 커브가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위력은 현재 많이 줄었다. 팔 높이가 매 시즌 내려갔다. 어느덧 사이드암과 스리쿼터의 중간 정도다. 속구는 자연스레 밋밋해졌다. 2008년 상하움직임이 23.5cm였지만 지난해 10.9cm에 그쳤다. 새로 장착한 싱커도 날카로운 맛이 없다. 21.1cm의 좌우움직임(Horizontal Movement)을 보였지만 타자에게는 배팅볼에 가까웠다. 지난해 피안타율과 피OPS는 각각 0.545와 1.318이나 됐다. 커브의 낙차 폭 역시 더 이상 크지 않다.
스윙스트라이크 확률(Sw Str%)은 공의 위력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볼스테드는 2.5%에 그쳤다. 반면 공이 배트에 맞은 확률(Contact%)은 95.4%나 됐다. 라인드라이브 타구비율(LD%)도 47.6%로 높았다. 지난해 빅리그 투수 평균 수치는 21.2%다. 환경이 불리하기는 했다.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 쿠어스필드는 해발 1638m의 고지대에 있다. 공의 움직임을 밋밋하게 만들어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내줄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콜로라도 투수들의 라인드라이브 타구허용비율은 22.7%다. 리그 평균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었다.
지난 시즌 트리플A 투구는 어땠을까. 콜로라도 트리플A 홈구장 시큐리티 서비스필드는 해발고도 1983m에 있다. 빅리그와 마이너리그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야구장이다. 볼스테드는 트리플A 콜로라도 스프링삭스에서 127.2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4.76을 기록했다. 땅볼타구비율(GB%)은 54.3%로 퍼시픽코스트리그(PCL) 평균인 44.2%에 비해 높았다. 땅볼/뜬공 비율은 2.84였고 LD%는 12.4%로 PCL 평균인 16.9%보다 낮았다.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싱커볼러 역할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치기 쉬운 공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피안타율과 피OPS가 각각 0.302와 0.823로 높았다. Contact%는 87.4%로 리그평균인 79.4%보다 높았고 Sw Str% 역시 5.4%로 리그평균인 9.7%보다 낮았다.
프로야구에서는 어떨까. 일단 긍정적이다. 두산의 홈구장인 잠실은 프로야구에서 가장 넓은 구장이다. 더구나 두산의 내야진은 국내 최고의 수비력을 자랑한다. 싱커볼러인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대요소는 하나 더 있다. 프로야구 타자들은 대체로 장신투수 특유의 높은 타점에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시즌이 진행되고 공이 눈에 익는다면 상황은 역전될 수 있다. 지난 2년간 트리플A에서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김성훈 해외야구 통신원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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