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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1930년대 모던보이·新여성은 '광고빠'였다…'상품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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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소비의 기원

[Book]1930년대 모던보이·新여성은 '광고빠'였다…'상품의 시대' 상품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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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나는 굳이 버스의 뒤를 보지 않으려, 그 얄미운 버스 뒤에다 광고를 낸 어떤 상품의 이름 하나를 기억해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으려 다른 데로 눈을 피한다." 소설가 이태준이 1973년 발표한 자전적 단편 소설 '장마'에 나오는 구절이다. 버스, 영화관, 신문, 휴대폰 등 우리가 생활하는 매 길목에서 광고를 피해가기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상품화할 수 있는 능력과 상품을 살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을 정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은 '상품'과 '광고'의 결과물인 '소비'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신간 '상품의 시대'는 사람들이 욕망하고 추구하는 기본적인 가치를 출세, 교양, 건강, 섹스, 애국 등 다섯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고, 아울러 '상품'이 어떻게 한국인을 바꾸어 놓았는지 짚어낸다. 저자 권창규는 소비사회의 기원을 찾기 위해 100여년 전인 대한제국과 식민지 시대 당시의 신문 및 잡지, 문학 작품들에 등장한 광고를 샅샅이 분석해서 내놓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가 그 시기를 100여년 전으로 잡은 까닭은 그 때가 마침 개항장을 거쳐 박래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때이자, 이 낯선 물건들을 설명하기 위한 상업 광고가 처음으로 등장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구한말 시기, 미국과 프랑스, 일본 등지에서 외국 자본과 함께 수입품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광고에 등장했던 인기 수입품은 표백제, 염색약, 담배 등이었다. 초창기 광고의 목적은 "무엇보다 상품을 소유하지 못함을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게끔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이에 따라 광고주들은 전통적인 소비시장과 구매 습관은 비합리적인 것으로 만들고 자본주의적 생활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주입했다. 1900년 '바진(Virgin)', '히이로(Hero)', '호니(Honey)' 등의 영어 이름을 가진 최신식 궐련이 황성신문 광고란에 게재됐고, 1936년 레토 크림 광고에는 "신사숙녀의 필수품, 이것을 바르지 않으면 현대인의 자격을 잃는 것같이 생각되게 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실렸다.


광고가 자극한 사람들의 욕망 중 '출세'에 대한 부분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모습이다. 1936년 조선일보에 실린 한 영어 학원의 광고 문구를 보자. "청소년 제군! 초여름은 입신의 무기, 영어를 정복하라! 석수쟁이 아들로 총리대신이 되는 실력의 세상인즉, 더욱이 '영어'를 아는 것이야말로 입신의 제일 무기이다." 이 광고 한 편을 통해 당시에도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영어'가 강조됐다는 사실과 '양반'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출세의 길이 열리게 됐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모던보이', '신(新)여성'은 최신 유행을 받아들이는 집단이었다. 저자는 당시 "새로움에 대한 열광은 전통 파괴와 부정을 의미하는 동시에 미국과 서유럽을 필두로 '서양'으로 통칭됐던 문명에 대한 호응을 담고 있었다"고 지적한다. 1935년 신동아에 소개된 화장품 광고에는 "유행품을 갖추신 당신의 소지품 중에 '탕고도랑'이 없다고 하시면 무의미입니다"라고 적혀있다. '구미 최신', '프랑스제', '미국 최신' 등의 문구가 일상적으로 쓰였다. 1936년 조선일보에는 맨살을 드러낸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등장해 충격을 주었다. 이 광고는 소비자에게 '멋진 신여성이라면 레저 스포츠를 즐겨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근대에 들어서 가장 달라진 점은 성(性)에 대한 관점이다. 조선시대 유교의 통치 질서 속에서 성은 음지에 놓여 졌지만, 근대 들어서는 학습과 유희, 관리의 대상으로 공공연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1920~30년대에는 "성기의 무능과 성욕의 쇠약은 남자의 대적(大敵)이니 속히 격퇴하라"는 등의 성 질환 치료제가 신문과 잡지에서 광고됐으며, "미인의 넘치는 육체미"를 실컷 감상할 수 있는 포르노그래피 광고까지 등장했다. 심지어 친절하게 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등화한 '기생요금표'도 신문에 버젓이 실렸다.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주로 광고주나 소비자인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으로 묘사됐다.


저자는 "근대 사람들이 구매력으로 이뤄진 새로운 소비의 위계질서 속으로 급속히 편입돼 갔고 상품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갔다"고 주장한다. 책에 소개된 다양한 광고 문안들은 '근대인'들의 소비트렌드를 보여주고, 박태원·김기림·이태준·김남천 등의 시와 소설, 평론 등은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소비 문화의 근원을 추적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광고는 새로운 생산자와 생산물을 소개하는 일종의 '알림' 역할로 출발했지만 이는 상품의 세계를 신화화하고 욕구를 만들어 내는 일과 떨어져 있지 않았다. 광고라는 신화는 상류층의 생활을 표준으로 제시하며 사람들의 계층 상승 욕망을 자극했다."


(상품의 시대 / 권창규 / 민음사 / 2만3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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