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김경주 시인(사진)은 영화, 연극, 음악, 미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전개하는 문화게릴라다. 시인은 그런 활동이 시적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믿는다. 또한 여러 장르에 ‘시적 질감’을 확산시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김 시인은 시극실험, 즉 낭독극에 오랫동안 천착해 왔다. 소리내어 노래하 듯 부르짖고 싶어 한다. 시를 짓기 보다 읊고, 소리내어 부르기를 좋아한다. 김시인은 시를 "연극이며 음악이고 영화"로 여긴다. 예전부터 시낭독을 펼쳐온 이유다.
이미 독립영화사 '청춘', 복합문화창작집단 '추리닝 바람'을 설립하고, 상상마당 기획위원으로 활동한 이력도 결국 시낭독으로 귀결된다. 김 시인은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에서 작품을 올리기도 하고 극작가로도 활동한다. 또 시극실험 운동을 하며 다양한 독립문화작업을 기획ㆍ연출하는 등 시단의 괴물이다. 워낙 왕성한 창작 열정 탓으로 이해된다.
시인에게 있어 다른 장르의 예술활동에서나 시적 작업에서나 '확장'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각 시집마다 확장을 통해 항상 새로운 시도를 펼쳐 왔다. 시인은 200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해,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기담’ ‘시차의 눈을 달랜다’를 출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과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최근 김 시인이 네번째 시집 '고래와 수증기'(문학과 지성사)를 내놨다. 5년 만의 시집이다. 확장이라는 의미는 이번 시집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언어적 의미'의 '확장'을 내보인다.
또한 상식의 틈을 비집고('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와 외부 장르를 통섭하고('기담'), 떠남과 돌아옴 사이의 시차를 이야기('시차의 눈을 달랜다')하는 동안 조금씩 다르지만 ‘불가능한 말’을 시로 드러내기 위해 분투한다. 이를 김행숙 시인은
“흐르는 시간을 ‘다르게’ 떠돌고자 하는 예술적 의지와 욕망”이라고 설명한다.
"당신 집에는 없고/내 집에 있는 냄비들/당신이 모으는 그릇들/내가 나르는 식기들/당신은 부드러운 베개를 모으고/나는 좁은 소매를 모으지/당신에겐 우람한 오토바이가 있고/나에겐 상냥한 모서리가 있지/당신에게는 없고/나에게 있는 냄새/국자를 까맣게 태우면/나는 눈물이 나지만/당신은 맛있는 밥을 짓지/지금은 장롱 속에 앉아 자는/엄마를 깨울 수 없다/장롱을 골목에 내다 버려도/엄마는 그 속에 앉아 있다/우린 모두 그 집에서/과도처럼 말라갔지/당신 집에는 없고/내 집엔 있는 증오들/나에겐 일요일이 너무 많았고/나에겐 아버지가 너무 많아/당신이 머리카락을 만져주던 여인들을/모두 아프게 하고 싶었어/당신에게는 없고/나에겐 있는 단추들의 이름/나처럼 웅크린 고양이는/검고 따뜻한 귀마개라 불러줘/내가 꼭 쥐고 자는 열쇠들은/파란 열대어 같아서/불을 끄면/속이불 속에서/귀를 막는 나의 자매들" ('정겨운 우울들' 전문)
'고래와 수증기'는 기존 시들에 구도자적 기질을 더 한다. 이번 시들은 더욱 간결해졌다. 대신 비워진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뒀다. 또한 기존 시들의 시선이 낯설고 새로운 것을 바라보고 있다면 이번 시들은 좀더 가까운 곳을 눈 비비고 다시 바라보려고 한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서는 '확장'이라는 의미가 가까운 것들의 내부로 향해 있다.
제목의 '수증기'나 첫 시의 '구름'('새 떼를 쓸다')에서부터 마지막 시의 '물거품'('파란 피')에까지 '입김'은 '문장을 짓'고('시인의 피') '물'은 '누구의 일부라도'('아무도 모른다') 되며 '눈'은 '조용한 단어들을 '기침'('이토록 사소한 글썽거림')하게 한다. .
"무대 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입김이다/그는 모든 장소에 흘러 다닌다/그는 어떤 배역 속에서건 자주 사라진다/일찍이 그것을 예감했지만/한 발이 없는 고양이의 비밀처럼/그는 어디로 나와/어디로 사라지는지/관객에게 보이지 않는다/입김은 수없이 태어나지만/무대에 한 번도 나타나서는 안 된다/매일 그는 자신이 지은 입김 속에서 증발한다/종일 그는 자신의 입김을 가지고/놀이터를 짓는 사람이다/입김만으로 행렬을 만들고자/그는 일생을 다 낭비한다/한 발을 숨기고 웃는 고양이처럼/남몰래 출생해버릴래/입김을 찾기 위해/가끔 사이렌이 곳곳에 울린다/입김은 자신이/그리 오래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무리 속에서 헤매다가/아무로 모르게 실종되곤 했다/사람들은 생몰을 지우면/쉽게 평등해진다고 믿는다/입김은 문장을 짓고/그곳을 조용히 흘러나왔다"('시인의 피' 전문)
이규성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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