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미국인으로 美 해병대 첫 입대 "편견·차별 극복…맥아더 같은 존재"
[아시아경제 김보경 기자] 한국 전쟁 중 가장 많은 미군 전사자가 발생했던 장진호 전투에서의 활약으로 미국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받던 커트 리(Kurt Chew-een Lee) 소령이 워싱턴DC에 있는 자택에서 최근 별세했다. 향년 88세.
미국 군사전문지인 밀리터리타임스 등 복수의 매체는 5일(현지시간) 그의 사망 소식을 타전했다.
192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리 소령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리 소령은 18살의 나이에 중국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미 해병대에 입대해 미군 정규 장교로 전역했다. 장진호 전투에서 뛰어난 용기와 리더십으로 활약했던 그는 '전쟁 영웅' 칭호를 얻을 정도로 미국인들로부터 추앙받았고 미 해군 수훈장과 은성 훈장을 받았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6일부터 12월13일까지 함경남도 개마고원의 장진호에서 미 해병 1사단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당시 미 해병대가 주축이 된 1만5000여명의 연합군은 12만명에 달하는 중공군에게 포위돼 전멸 위기에 몰렸지만 치열한 전투를 펼치면서 후퇴에 성공했다.
당시 24세였던 리 소령은 혹한과 부상 속에서도 중공군 8000명을 상대로 미군 500명의 철수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10년 한국전 발발 60주년을 맞아 미국의 다큐멘터리 방송사인 '스미스소니언 채널'이 '비범한 용기'라는 제목으로 특집물을 제작해 프라임 시간대에 방송하는 등 장진호 전투는 미국인들에게 각별한 전투로 기억되고 있다.
리 소령은 같은 해 현역 미 해병대 대위가 미 전역을 돌며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던 노병 180여명을 인터뷰한 기록영화 '장진호 전투(Chosin Battle)'에도 출연해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또 그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그 전쟁에서 살아 돌아올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서 "나의 죽음 자체가 명예롭고 훌륭한 일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리 소령과 군생활을 함께했던 퇴역 군인들은 최근 몇 년간 그의 영예로운 행동을 기리는 명예 훈장 수여를 주장하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로저 동 전 미국 전쟁기념관위원장은 "단지 그가 살아있기 때문에 명예훈장을 수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다"라며 "리 소령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해외참전용사회는 "편견과 인종 차별을 극복했던 그는 장진호전투에서 조지 패튼이나 더글러스 맥아더 같았다"고 추모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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