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흥순 기자]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종목에는 징크스가 있다. 싱글 프로그램의 배경음악으로 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사용하면 금메달을 따지 못한다는 속설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쇼트와 프리 점수를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으로 바뀐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 남녀 싱글에 걸쳐 가장 자주 사용됐다. 모두 여섯 곡으로 피아노협주곡 1, 2, 3번과 슬픔의 삼중주 2번, 모스크바의 종,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 등이다.
이 가운데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가 나왔다. 금메달은 '반 개'다. 사라 휴즈(29·미국)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대회 프리에서 '피아노 협주곡 2번'과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사용해 우승했다. 그러나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발레모음곡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섞어 사용했다.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징크스는 이어졌다. 14일(한국시간) 열린 남자 싱글 쇼트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 E플랫 단조'를 사용한 패트릭 챈(24·캐나다)이 합계 275.62점으로 은메달에 그쳤다. 2011년부터 세계선수권 3연속 우승을 차지한 강력한 우승후보였으나 280.09점을 받은 일본의 샛별 하뉴 유즈루(20)에 밀렸다.
김연아와 함께 여자 싱글 금메달 후보로 꼽히는 아사다 마오(24·일본) 역시 21일 열리는 프리 곡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선택했다. 아사다는 4년 전에도 라흐마니노프의 '모스크바의 종'을 프리 음악으로 택했으나 김연아를 넘지 못하고 은메달에 만족했다.
하지만 아사다가 희망을 가질 만한 조사 결과도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이 19일 소치동계올림픽 피겨 종목 159경기의 음악 장르별 평균 점수를 계산해 보도한 내용이다. 러시아 곡을 사용한 선수가 영화 주제곡이나 재즈, 팝송, 록 등을 사용한 선수보다 점수를 많이 받았다.
여자 단체전에서 쇼트 프로그램의 전체 평균 점수는 59.92점, 그 가운데 러시아 음악에 맞춰 연기한 선수의 평균 점수는 72.9점이었다. 재즈·팝송·록 음악은 56.32점, 브로드웨이 음악은 62.54점이다. 여자 프리에서도 전체 평균은 121.29점인데 반해 러시아 음악은 129.38점이 나와 영화 음악(110.73점)과 브로드웨이 음악(112.33점) 등을 압도했다. 남자 싱글과 페어, 아이스 댄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좋은 음악을 선곡하면 관중석의 반응이 잘 나오고 채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 곡을 통해 홈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쇼트와 프리에서 각각 뮤지컬 음악 '어릿광대를 보내주오(Send in the Clowns)'와 아르헨티나 탱고 곡 '아디오스 노니노(Adios Nonino)'를 택한 김연아의 점수 구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러시아의 신예 율리야 리프니츠카야(16)는 쇼트 곡으로 자국 출신 작곡가 마르크 민코프스키의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요'를 골랐다. 프리 음악은 영화 '쉰들러리스트' 주제곡이다.
김흥순 기자 spor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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