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대중화 이끄는 '통섭 피아니스트' 권순훤씨 인터뷰
-"기존 클래식 공연들 관객 배려하기보다 자기 자랑 급급"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대통합 이루는 예술적 통섭으로 작품 감상해야"
-"고등학교때 집이 망해 가건물서 살 때 가장 힘들어"
[아시아경제 김재연 기자]클래식 감상은 KBS 열린음악회가 전부인 대중들에게 클래식 공연은 여전히 어려운 문화생활이다. 큰맘 먹고 연주회 한번 보러 나가도 어느새 흥미는 사라지고 눈꺼풀은 감겨오기 일쑤다.
권순훤 서울종합예술대학교 겸임교수는 이 같은 공연들이 "관객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자랑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관객들 위주의 공연을 위해 고민하는 그이기에 할 수 있는 비판이다. 수년째 이어진 그의 공연 '권순훤의 이지 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는 명화에 클래식을 잇는 재미있는 해설로 큰 인기를 끌어왔다.
권 교수는 자신이 피아노를 가르치지만 미술, 건축, 문학 등 예술 다방면을 '융합적'으로 감상하는데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클림트를 닮고 싶다는 그.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 책 출간과 관련해 권순훤 피아니스트와 서면 인터뷰를 가졌다.
클래식에 그림을 연결한다는 콘셉트가 흥미롭다. 이 같은 공연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영화를 보는데, 갑자기 스피커가 고장 났다.영화의 멋진 장면은 그대로인데, 배경음악이 없어지니 그 느낌이 전혀 달랐다. 감동이 확 반감되는 느낌이랄까. '아, 배경음악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거꾸로 생각해봤다. 음악을 들려주면서 그 음악과 어울리는 미술작품과 그것이 만들어진 계기 혹은 일화를 소개해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는 실행하게 됐다.
그동안 공연이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훌륭한 제작진을 만났다. 공연기획자들과 충분히 토론하고 '어떻게 해야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께 가장 좋은 결과물로 보답할 수 있을까?'를 함께 많이 고민했다. 사실 클래식 공연계에서는 아직도 많은 음악가들이 '내가 이렇게 잘하니 들으러 오라'는 콘셉트로 공연을 진행한다. 쉽게 말해, 관객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자랑을 하는 거다. 나는 반대다. 공연장에 온 관객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떻게 진행해야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지 고민한다. 그 진정성이 통한 게 아닌가 한다.
클래식 뮤직 비디오를 직접 만들기도 하고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기도 한다. 기존 클래식계에 대한 불만은 ?
한 세대 전과 비교해서 음악을 표현하고 알리는 수단은 셀 수 없이 많아졌다. 그런데 예술을 평가하는 잣대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대중들은 디지털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 동영상 감상, 음반 등 수많은 방법으로 클래식 음악을 접하고 향유하는데, 기존의 클래식계는 (전부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청중의 변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단적인 예를 들면, 클래식계에서 어떤 자리에 인재를 등용할 때 아직도 콩쿠르 순위나 독주회 같은 고전적인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고 선발한다. 물론 내 경우는 이런 방식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지만,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런 기준도 조금씩 변화해야 하는 것 아닐까?
조금 더 다양하고 편견 없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클래식계를 성장시킬 열정적인 인재를 등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선발된 사람들이야말로 급변하는 청중의 요구를 제대로 녹여내 클래식 음악을 더 잘 알리고 더 풍성하게 발전시킬 것이다. 다양한 인재들이 활약해 더욱 다채로운 컬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책에 나오는 것처럼 고갱의 그림을 보면서 따스한 클래식 음악이 떠오르곤 하나?
맞다. 고갱이 그린 타히티의 풍광은 음악으로 치면 밝은 E장조다. 화려한 음색을 자랑하는 바이올린이 떠오른다. <무반주 파르티타> E장조의 프레스토가 잘 어우러진다. 뭉크의 '절규'는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와 너무나 잘 어우러지지 않는가?
또한 음악가와 미술가의 삶을 떠올리다 보면 서로 배경음악과 배경화면이 되어주는 음악과 미술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신혼생활의 기쁨이 고스란히 표현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들을 때면, 루벤스의 그림 <인동덩굴 아래의 루벤스와 이사벨라 브란트>를 자연스럽게 연상할 수 있다.
작품에 나오는 작가들 가운데 자기와 가장 비슷하다고 느끼는 작가가 있는가?
이 책에 수록된 거장들과 나를 비교하기엔, 내가 갈 길이 아직 멀게 느껴진다. 단, 닮고 싶은 작가를 꼽자면, 클림트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추었고, 그 자신도 생전에 그것을 누렸다. 상업적인 성공을 바탕으로 어느 누구에게도 아쉬울 것 없는 위치에서 자신만의 삶과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영위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단체를 조직하거나, 특정 단체에 들어가서 자신의 불안정안 삶을 '소속감'이라는 안정제로 치료하고 싶어 했지만, 클림트는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 진정 자유로운 영혼이랄까?
직접 레이블도 운영하고 교수도 하고 춤도 잘 추는 것 같은데 못하는 건 뭔가?(권 교수는 클래식 음반 제작 전문 업체 네오무지카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서울종합예술학교 신입생오리엔테이션에서 수준급 춤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딱 하나만 진짜 잘해서 그것만 해도 걱정 없는 삶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람은 수명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하는 유한한 생명체인데, 나는 그 주어진 수명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즐겁게 누리고 싶다. 레이블을 운영하면서 학생들도 가르칠 수 있는 지금의 내 상황에 감사할 따름이다. 춤은 중고생 때 놀던 가락(?)이 아직 사라지지 않고 나오는 것 같다.
이제 30대 중반인데, 젊을 때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해보고,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선택과 집중을 하고 싶다. 그래도 못하는 것을 하나 꼽자면, '가만히 있는 것'을 못한다.
약력을 보면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는데 자기에게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권 교수는 서울대 음대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대학원까지 마친 후 서울예술종합대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등학교 때 집이 망했다. 그냥 망한 게 아니라 완전히 망해서 가건물에서 살았다. 아버지 차 번호판이 시청에 압수되고, 내 업라이트 피아노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었다.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부잣집이 망하면 가구에 붙는 바로 그 빨간딱지…. 우리 집이 그런 대단한 부잣집은 아니었지만, 그 빨간딱지가 내 분신과도 같은 피아노에 붙어 있던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딱지를 훼손하면 처벌 받는다'는 글귀도 내 머릿속에 필름처럼 남아 있다. 생각해보면, 그때 진짜 '독기'를 품었다. 그리고 그 독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대학 진학이었다. 아마도 그 에너지로 서울대에 진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담이지만 보아도 그렇고 집안에 음악가가 많다 부모님의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는 건가?
뭘 하라고 주문하는 대신,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신다.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자식을 키우신 게 아니라, 자식새끼들이 뭘 하고 살고 싶은지 귀기울여주셨다. 각자 하고 싶은 걸 말씀드릴 때, 진정성이 느껴지는 경우만 밀어주셨다. 그것도 조건부로. 예를 들어, 내가 정말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어머니는 성적 몇 점 이상을 요구하셨고, 난 어떻게든 그 점수를 받아냈다. 그러고는 원하는 장난감을 얻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점수가 1점이라도 모자라면 아무것도 없었다.
중학교 때, 음악을 하고 싶다고, 그래서 예고 시험을 보겠다고 했을 때도, 그 시험에서 떨어지면 무조건 공부에 매진하는 것으로 조건을 거셨다. 다행히도(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끔은 헷갈리지만) 붙었으니 지금 이렇게 살고 있겠지.
음악 안 할 때는 뭘 주로 하나?
운동 마니아다. 아침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5km정도 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는다(미스터 서울대 선발대회 본선진출까지 했다). 골프는 보기플레이 수준이다. 구력 2년 7개월 라베는 82타. 컴퓨터 게임은 전혀 못한다. 음악을 하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이고 땀 흘리는 것을 제일 좋아한다. 그래야 저녁때 술 한 잔도 편하게 넘어간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발전시키다 보면, 더 즐겁고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글쓰기, 교수 생활, 음반 프로듀싱 등 지금 하는 일들을 최선을 다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그 일들을 잘해내는 권순훤이라는 브랜드를 더 내실 있게 키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김재연 기자 ukebid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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