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혐의 벗은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선고 후 첫 언론 인터뷰
"소모적 형제갈등보다 중국發 경영위기 탈출이 우선"
박삼구 회장과는 이제 각자의 길…시간 너무 흘러 화해 어려울듯
사업 최대악재는 中 경제 성장둔화…기술차별화·원가경쟁력으로 승부
[대담=노종섭 산업부장, 정리=임선태 기자]"형(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그룹, 나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을 경영하며 이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다."
1심 선고 후 언론과의 첫 만남. 지난달 28일 만난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사진)은 선고 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형과의 화해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만큼 현 상황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는 건 여러모로 어렵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그동안 자신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형의 모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왔고, 1심 선고로 대부분의 혐의를 벗음으로써 형제간 화해 가능성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1심 선고 후인 지난 3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박 회장의 운전기사 A씨를 주거침입죄 및 배임수증죄로 경찰에 고소함에 따라 양측의 갈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날 A씨의 사주를 받은 보안용역 직원 B씨가 80여차례에 걸쳐 그룹 비서실에 잠입, 박삼구 회장 개인비서가 관리하는 문서를 무단으로 촬영, 자료를 몰래 빼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형도 잘 돼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많이 있다"며 5년차를 맞이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워크아웃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워크아웃 이전, 당시 대한통운을 매각했었다면 대우건설 (풋백옵션 해결을 위한) 숨고르기가 가능했을 것"이라며 "대한통운을 팔고 (이 자금으로) 대우건설 풋백옵션을 막을 수 있었던 점을 감안할 때 (그룹의 현 워크아웃 상황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각 자의 길을 가야 하는 마당에 형과의 소모적인 갈등보다는 금호석유화학을 잘 이끌어가는 게 더 중요하다"며 주제를 돌렸다. 올해를 '사실상의 독립경영 원년'으로 선포한 박 회장은 인터뷰 내내 사업 성공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내비쳤다.
그는 ▲지속되고 있는 글로벌 경기 침체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위기 ▲아시아 석유화학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왔던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을 올해 글로벌 석유화학업체들의 대표적인 위기 요소로 꼽았다.
올해 신년사를 통해 중국의 성장 둔화 및 자급률 상승을 최대 위기 요소로 꼽은 박 회장은 인터뷰 과정에서도 중국시장 진단을 빼놓지 않았다. 박 회장은 "2009~2011년 국내 석유화학의 성장세를 이끌어 왔던 중국시장의 성장세가 최근 둔화되면서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범용제품에 대한 경쟁력을 키우고 있는 중국의 자급률 상승 기조도 대표적인 위기 요소"라고 진단했다.
이른바 '중국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박 회장은 차별화된 기술·원가경쟁력을 꼽았다. 이를 통해 현지 법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은 금호석유화학에 가장 큰 시장이며, 세계에서 성장성이 가장 큰 시장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차세대 합성고무의 기술경쟁력을 바탕으로 범용 고무에 대한 원가경쟁력을 더욱 강화해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회장은 유럽시장을 글로벌 업황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잠재시장으로 전망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후 합성수지 터키 수출량이 2012년 대비 30% 증가했다"며 "터키 양대 가전사인 아첼릭과 베스텔, 그리고 유럽 메이저 케미컬 트레이더인 레지넥스 등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올해 터키 내 합성수지 판매량은 2013년 대비 50% 신장을 목표로, 현지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대규모 기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가전사에 신규 재질을 공급하는 한편, 중대형 고객들을 추가로 개발할 계획"이라며 "양적인면뿐 아니라 질적인 성장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중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비밀병기로 박 회장은 네오디뮴부타디엔고무(NdBR)를 선택했다. NdBR는 내마모성과 내발열성이 우수한 소재로 골프공뿐 아니라 타이어, 신발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는 제품으로, 금호석유화학은 세계에서 네 번째로 상업화에 성공했다.
박 회장은 "올해는 차세대 일류상품으로 연간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고기능성 합성고무 NdBR를 주목하고 있다"며 "지속적인 NdBR 물성 향상과 생산성 향상 연구를 통해 제품경쟁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으며, 연산 4만5000t의 생산능력도 향후 시장 상황의 변화에 따라 6만t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신규 투자와 관련해서는 "불요불급한 투자는 자제할 것"이라며 '질적성장'을 강조했다. 대외 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고, 시장에 의존한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데 주력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그는 "판매, 생산, 구매 간 원활한 정보교류 및 재고관리 강화를 통해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투자는 투자심의위원회 운영을 통해 투자에 대한 집행 타당성 및 적정성 등을 재점검, 투자에 대한 선택과 집중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지난해 성과를 이뤄낸 열병합발전소 증설, 탄소나노튜브 등 기존에 집행한 미래 성장 사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해 나갈 뜻을 내비쳤다. 그는 "탄소나노튜브는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조할 수 있는 소재로써 회사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아울러 본원적 경쟁력인 차세대 합성고무에 대한 연구개발(R&D) 투자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국내 석유화학 업황은 하반기께 회복세를 점쳤다. 미국 등 선진국 중심으로 거시경제 지표의 완만한 회복세가 예상되고, 기저효과 수준이지만 중국의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 회복이 예상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수요는 상반기에 횡보하다 하반기 들어 서서히 개선될 것으로 전망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다"고 했다.
석유화학업계 이슈 중 하나인 셰일가스 개발에 대해서는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셰일가스 기반의 에탄크래커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경우 회사의 주력인 합성고무의 주원료 부타디엔(BD)의 발생량이 크게 감소하게 된다"며 "셰일가스에 대한 직접적인 투자는 현재 고려하고 있지는 않지만 시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으며 원료 소싱을 위한 관련 기업과의 사업 협력 관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사의 주가는 상승 여력이 충분한 것으로 판단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에는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 유럽 및 선진국의 경기 부진 지속 등 글로벌 경기 회복 지연으로 회사 실적이 저조해 주가가 연초 대비 많이 하락했다"며 "올해는 글로벌 자동차 생산량 및 타이어 생산량 증가를 동반한 합성고무 부문의 실질적인 실적 개선 등에 힘입어 주가가 충분히 상승 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대담=노종섭 산업부장, 정리=임선태 기자 neojwalk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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