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하다는 조짐을 느끼기 시작한 건 한 달 전쯤부터였을까. 늘 하던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의 성과도 전과 큰 차이가 없는데, 아니 오히려 실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데, 핀트가 맞지 않는다는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회의 중간중간 빙 둘러보면 함께하는 동료들의 표정이 전과 달리 굳어 있거나, 각자 활발하게 의견을 내야 할 대목에서 나 혼자 목소리 높여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이게 아닌데' 싶어 흠칫 뒤로 물러서기도 여러 차례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온라인 강화 대책을 논의할 때도 그랬고, 연말연시 특집을 위한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아, 이거 분명 잘못되고 있는 거 같다'고 확실하게 느낀 건 연초 기획전을 준비할 때였다.(그때도 큰 반성 없이 으레 그러려니 하면서 혼자 달려 나가기 바빴던 거 같다) '이거 내가 예전에 여러 번 해봐서 잘 아는데' 하는 자신감과 '일정은 빠듯한데 왜 이리 속도가 안 나고 있는 거지' 하는 조급함, '일의 성격을 놓고 볼 때 이건 나보다 저쪽에서 일일이 챙기고 꼼꼼히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불신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회의 때마다 혼자 꽥꽥대고 상대를 비방하고 험한 말은 죄다 내쏟고, 하기 일쑤였다.
더 심각한 건 그렇게 회의를 마친 뒤 '아, 이제 일을 좀 제대로 한 거 같다'는 자만심에 스스로 대견해했다는 것이다. '역시 내가 앞장서서 끌고 나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하는 뿌듯한 쾌감과 함께 '혹시 불의의 사고가 나거나 갑자기 병에라도 걸려 회사에 못 나오게 되면 그땐 어쩌지, 분명히 다들 나를 엄청 아쉬워하고 그리워할 거야' 하는 근거 없는 자존감에 으쓱으쓱 건들거렸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뒷덜미를 확실하게 잡힌 사건 하나가 발생했으니(사건이라고까지 하기엔 좀 거창하지만), 다름 아닌 ㅇ기자의 야릇한 표정이었다. 그날 회의도 어김없이 화기애애하게 시작해서 서먹서먹한 풍경으로 내닫고 있었고, 내 목소리도 점차 한두 옥타브 높아지면서 짜증기가 묻어나고 있었는데, 묵묵히 앉아있던 그의 안면 근육이 서서히 경직되면서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애써 참는 표정 같기도 하고, 실망이 극에 달해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안쓰러운 표정 같기도 했는데 그때 나를 바라보던 그 시선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주말 내내 답을 찾느라 고민하고 있는데 이게 정답인지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다. 새로 한 해를 시작하면서. <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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