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언젠가부터 한국 영화계는 어둡고 음산해졌다. 남성 위주의 영화들이 많아졌고, 쉽게 웃고 떠들 수 있는 코미디 영화들이 즐비하며, 스릴러나 범죄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관객들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배우 황정민은 "어느 순간부터 멜로 영화가 장사가 잘 안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더욱 지독한 멜로 영화가 하고 싶었고, 관객들과 좀더 가까이서 공감하고 싶었다.
그는 새해 첫 작품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감독 한동욱)를 택했다. 이 영화에서 황정민은 '품절녀'가 된 한혜진과 호흡을 맞췄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평생 사랑이란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거친 남자 태일(황정민 분)이 호정(한혜진 분)을 만나 첫눈에 반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주위를 돌아보게 하며 따뜻한 공기로 모두를 감싸 안는다.
태일은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우직하고 한결같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사채빚을 받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호정과 첫 대면을 하고, 그의 힘든 사정을 알게 된 태일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다. 그는 자필로 쓴 각서에 아기자기한 그림을 그려와 호정 앞에 내밀고 빚을 삭감하는 대신 자신과의 만남을 제안한다.
호정은 태일을 격하게 거부하지만 이내 그의 순수한 마음을 알아차린다.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진 호정. 결국 두 사람은 사랑의 결실을 맺기 직전까지 도달하지만 인간의 삶이 늘 그렇듯, 순탄한 결말을 맞지는 않는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 지독한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했다. 교묘하게 위장하고 화려하게 치장한 사랑이 아니라 본질적인 감정을 그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처절한 태일의 삶을 지켜보면서 '대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다소 뻔한 설정은 아쉬움을 남긴다. 예측 가능한 반전과 결말, 눈물을 짜내는 듯한 스토리가 눈앞에 펼쳐져 실망하는 관객들도 더러 있을 듯 보인다. 크게 거슬리는 군더더기는 없음에도 조금은 지루한 감이 있어 멜로 영화의 장르적 한계를 탈피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배우들의 열연은 좋았다. 특히 호정으로 분한 한혜진의 깊어진 감정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는 실제 삶 속에서 많은 아픔을 경험하면서 연기에 재산이 된 것 같다고 고백했다. 혼자 튀지도 않고 흐름을 방해하지도 않으며 한혜진은 자신이 맡은 몫을 충분히 해냈다. 성형 미인이 아닌데다 화장기 없이 수수한 외모 또한 극의 몰입을 도왔다.
황정민은 '신세계'의 건달 연기가 잊혀지기 전에 이 작품을 개봉하는 점이 조금은 아쉽지만 연기력 만큼은 일품이다. 그가 흘리는 닭똥같은 눈물은 남자들의 눈물샘마저 자극한다. '너는 내 운명' 속 주인공보다 감동은 덜하지만 훨씬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관객들을 맞이한다. 누구보다 강렬한 사랑을 품고 있지만 '남자이기에' 숨기고 감내하는 황정민의 모습을 보며 남성 관객들은 또 한번 열광할 듯 하다.
곽도원의 연기 변신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국민 악역'에 등극한 곽도원은 이번 영화를 통해 평범하고 소심한 남자를 연기하며 그가 실제로 지니고 있는 소탈한 매력을 발산했다.
기대가 너무 커서일까. 일말의 아쉬움은 남지만, 가슴 뜨거운 사랑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단비 같은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애절한 한 남자의 진심이 관객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과연 얼마나 많은 관객이 부름에 응답할까. 개봉은 오는 22일.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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