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요식행위로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위생심의위원회 위원직을 사퇴한 김익중 동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의 개탄이다. 방사능 전문가인 김 교수는 최근 식약처의 연락을 받고 식품위생심의위원회 방사능분과의 위원직을 수락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고 단 한 차례의 회의도 참석하지 않은 채 이메일로 식약처에 위원직 사퇴 의사를 표시했다.
김 교수가 겪은 황당한 경험은 우선 갑작스러운 회의 일정 통보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중순 위원직을 제안받고 며칠간 고민 끝에 19일 수락 의사를 밝혔더니 그 자리에서 다음날인 20일 회의가 잡혔다며 참석하라는 '벼락치기' 통보가 온 것이다.
일정상 참석할 수가 없었던 김 교수는 황당했지만 "안건과 회의 자료를 보내 주면 검토해보고 의견을 보내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식약처는 "참석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건을 보내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회의가 끝난 후 결과가 궁금해 전화를 걸었지만 식약처 담당 직원은 자세한 회의 내용 설명은커녕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됐으니 들어가서 봐라"고 말했다. 그러나 직원이 말한 인터넷 홈페이지 어디에도 회의 결과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 교수는 결국 자신과 함께 위촉된 다른 민간인 전문가로부터 회의 내용과 함께 '사정'을 알게 됐다. 방사능 검사 방법을 완화하겠다는 것으로, 자신의 소신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그는 곧바로 식약처에 전화를 걸어 "이런 식으로 위원회를 운영할 거면 내 이름을 빼달라"고 사퇴 의사를 표시했다. 또 식약처에 이메일을 통해 공식적으로 위원직 사퇴 의사를 통보했다.
식약처는 김 교수가 겪은 이같은 일에 대해 "아무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위원회 회의 일정을 김 교수 한 사람 때문에 바꿀 수는 없는 것이며, 안건과 자료 등은 당일 토론됐던 내용의 성격상 굳이 미리 주지 않아도 될 만한 것이었기 때문에 미리 배포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회의 결과도 녹취록 등을 통해 만들고 있으며 참석 위원들의 동의를 얻어 공개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일주일전부터 위원들의 일정을 감안해서 회의 날짜를 잡았다"며 "자문을 구하는 회의였을 뿐 어떤 결론을 내는 회의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공무원들이 의도적으로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전문가들을 쫓아내려고 회의 운영을 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안건을 미리 줘야 공부도 하고 자료도 찾아 보고 해서 당일 회의때 의견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 아니냐"라며 "하루 전에야 일정을 갑작스럽게 알려주고, 참석하지 못하지만 검토해서 의견을 보내면 회의에 참고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못하게 하는 것 등을 볼 때 공무원들이 애초부터 위원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게 아니라 다 정해진 결론을 통과시키기 위한 요식행위로 위원회를 운영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반핵 운동가인 김 교수는 그동안 식품에 대한 방사능 오염의 위험성이 심각하며, 방사능 오염 관련 기준치가 너무 높게 설정돼 있는 등 정부의 대응이 안이하다는 점을 지적해 온 전문가 중 한 명이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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