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풍년에…'환율의 역설'
내년 성장 믿을 건 수출뿐인데
원화가치 강세에 車산업 등 부담
[아시아경제 이윤재 기자] 정부의 환율 정책이 딜레마에 빠졌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발표 이후 외국인 자본의 국내 유입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 자본이 유입되면 국내 경기 활성화에는 도움이 되지만 환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수출에 악영향을 준다. 내년도 3.9% 성장을 위해서는 수출의 역할이 필수적인데 환율이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어 수출에 위협을 주고 있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6월24일 달러당 1163.50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최근 1070원대까지 떨어졌다. 14일 오전 9시50분 현재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072원에 거래 중이다.
이처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경상 수지 흑자의 효과도 있지만 외국 자본이 꾸준히 국내로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중단 시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이후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외국자본은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여타 신흥국에 비해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강하다는 점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지난 8월23일 이후 지난 11일까지 31거래일 연속해서 외국인 순매수세가 이어졌다. 31거래일 동안의 외국인 순매수 규모는 10조9684억원에 이른다.
채권시장의 강세도 이어지고 있다. 채권 시장의 외국 자본의 거래 규모는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3년물 국고채 금리는 6월 말 3.12%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줄곧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1일 기준 3년물 국채 금리는 2.86%를 기록했다. 우리나라 채권의 안정성이 확대되고 있다는 징후로, 앞으로 채권시장에 유입되는 외국 자본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외국 자본이 국내로 유입되면서 원·달러 환율은 4개월 사이 100원 가까이 떨어졌다. 원화 가치가 강세를 보이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평가가 올라가는 것이지만 수출에서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수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리게 되는 것. 일례로 자동차 산업의 경우 원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위협받고 있다. 특히 엔화 약세가 지속돼 일본산 자동차의 가격이 떨어지고 있어 현대자동차 등의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사업계획상 환율기준을 1050원으로 정해두고 있는데, 지금과 같은 환율 추세가 지속되면 새로운 대책을 짜야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환경 때문에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 수출은 내년도 우리나라가 3.9% 성장을 하기 위해 가장 큰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다. 내수시장은 소비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고, 기업들의 투자도 정체돼 있다. 세입 여건이 좋지 않아 정부의 재정으로 경제를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다. 결국 수출에서 활로를 찾아야 하는데 환율이 떨어지면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되는 꼴이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되는 것은 수출에 긍정적인 요인인데, 현재 우리나라 환율은 이 같은 기회요인을 상쇄하고 있다"면서 "과도한 자본유입으로 인한 원화절상압력에는 자본유입 억제 대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이윤재 기자 gal-r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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