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가을 어느 날,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맞으며 장충동을 지나 위장병에 특효가 있는 약수가 많이 나온다는 약수동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강남으로 넘어가는 차들로 약수고가도로가 꽉 막혀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내가 서울시에 근무하던 시절 신당고가도로 등을 철거하던 모습이 하나둘씩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60∼70년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 개발의 상징처럼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청계고가도로 등 100여개 고가도로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서울의 도심 여기저기에는 마치 지역개발의 자부심처럼 동네의 이름을 붙인 고가도로가 생겼다.
당시 고가도로의 설치와 존재 이유는 '교통효용'이었다. 땅은 한정돼 있는데 자동차 수가 점점 많아지다 보니 차도를 하나 더 얹어 놓는 방법에 눈을 돌린 것이다. 1966년 국내 최초로 설치된 서소문고가도로는 왕복 4차로로 경의선 철도를 횡단하는 구조였다. 1990년대 이후에도 간선도로와 교차로 소통을 위해 복정ㆍ잠원ㆍ선유ㆍ사당 등에 고가도로가 잇따라 들어섰다. 이 당시 고가도로는 차량운행 속도를 높이고 교통정체로 인한 공기오염, 경제적 손실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패러다임은 점차 변화하기 시작했다. 2002년 전농동 '떡전 고가차도'를 시작으로 2009년까지 11개 고가도로가 철거됐고 시는 2009년 12월 교차로 소통용 고가도로 12곳에 대한 추가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고가도로가 시설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 막대한 유지ㆍ보수비용, 고가 아래 지역의 슬럼화 경향, 도시미관과 생활환경에의 악영향 등 문제를 나타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특히 지역 간 단절로 발전을 억제시키는 등 부작용도 컸다.
일부 고가가 철거되면서 차량통행이 오히려 줄어들고 고가도로에 눌려서 사용하지 못했던 칙칙하고 컴컴한 공간이 활기차고 밝은 공간으로 되살아날 뿐만 아니라 지역 상권도 활기를 되찾게 된 것은 고가차도의 이 같은 문제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멀쩡한 시설물을 철거하기란 쉽지 않았다.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에 근무하던 1989년부터 체계적인 교통분석 결과를 토대로 고가 철거계획을 세웠으나 초기에는 지하철 건설공사 중 철거하고 나중에 복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해야 했고, 그 후에는 아예 고가도로가 필요하게 될 경우에만 설치 가능토록 하는 식으로 설치 조건을 강화했다. 1996년 서울시 도로계획과장 시절에도 이미 건설키로 확정돼 있던 신촌로터리 고가를 비롯해 공덕오거리, 천호사거리, 삼일로, 퇴계로의 고가 등 고가도로 건설계획을 평면 교차로나 지하차도로 구조를 변경했다.
본격적으로 고가차도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 것은 청계 고가차도를 철거한 후였다. 청계천을 '환경 친화적'으로 복원하고 난 후 고가차도 철거에 대한 요구가 쇄도했다. 그래서 도심지역에 설치된 광희고가와 회현고가 차도가 철거되고 미아고가, 언남고가, 홍제고가 등도 잇따라 철거됐다.
이제 사람들은 과거처럼 빠르게 이동하는 것보다 쾌적한 환경을 더 많이 원하는 듯하다. 좋은 공기나 경치 등과 같은 삶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고가도로는 어느덧 도심의 흉물,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게 됐다.
앞으로 약수고가도로도 곧 철거될 것이다. 개발의 광풍에서 산업화의 흐름을 주도한 고마운 '보물단지'가 이제는 도심의 '애물단지'로 전락해 어느새 역사 속으로 퇴장하고 있다. 고가도로가 한때 '순기능'을 수행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변화를 피할 수는 없고, 피해서도 안된다. 고가도로에 미련 없이 퇴장하기 바란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래서 햇살 좋은 어느 날, 뻥 뚫린 하늘을 보며 전망 좋은 약수사거리를 쌩쌩 달리고 싶다.
최 창 식 서울 중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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